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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화 그림 &#8211; 포스코뉴스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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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8편.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변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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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May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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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35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86E39573ECAFF328266.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포스터" width="635" height="36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 &#8216;현대적으로 변용된 사군자&#8217;에 대해 들려드릴까 합니다.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근대 이후 사군자화의 변화</h2>
<p style="text-align: justify;">오랜동안 군자의 식물로 애호되었고, 또 생활 속에 스며들어 각종 문양의 소재로도 쓰였던 사군자는 그 개념은 있었지만 용어가 보편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입니다. 사군자라는 용어가 매·란·국·죽을 가리키며 직접적으로 사용된 예는 1922년부터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 규정’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 전람회의 사군자 규정에 “주로 먹을 사용한 간단한 그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금껏 ‘매죽’ 혹은 ‘난죽’이라 부르던 것이 최초로 ‘사군자’라는 용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죠.</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그 배경에는 아픈 역사가 함께 합니다.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부는 조선 사람이 홀로 무대를 휩쓸었고,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시대 상황에서 사군자화는 절개와 인고의 상징성으로 인해 크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회가 거듭되자 총독부는 동양화부에 속해있던 사군자를 ‘서부(書部)’로 넣었다가 점차로 입선작을 줄여 아예 없애버린 것입니다. 사군자가 민족사상을 이어간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이후 조선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1939년에 열린 조선서도전람회와 1940년에 열린 문인서화전람회에 서예와 함께 전시됨으로써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35A139573ECAFE1717FF.jpg" alt="윤용구, 사군자 10폭 병풍 종이의 수묵, 각 127*34cm 개인소장" width="628" height="33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근대기에는 사군자 중에서도 ‘난죽’(蘭竹)이 사군자를 대표하는 식물이 되었고, 남아 있는 작품 또한 난죽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간단하다고해서 쉬운 것은 아니나 사군자를 배우는 과정에서의 편의성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를 계절에 맞추어 봄-매화, 여름-난, 가을-국화, 겨울-대나무로 보는 것도 중국 사람들이 겨울 매화, 봄 대나무, 여름 난, 가을 국화라 했던 것과 다른 우리만의 특징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에 대한 애호 분위기로 당시 각 신문의 신년 휘호에 사군자화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형미와 함께 상징성이 큰 사군자화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다짐을 함께 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을 것입니다. 역으로 신년 휘호의 사군자화가 사군자를 대중과 더욱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1900년대 초반 사군자화는 이처럼 급격히 대중화되었고, 사군자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p>
<h2 class="o_title">전통의 새로운 해석</h2>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가 대중화되면서 사군자화의 정신성은 점차 약화되었고,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모 사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한동안 답습되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구성 때문에 필법을 익히기 위한 그림의 입문과정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없지 않았죠.</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한 가운데 몇몇 동양화가들 사이에서 당시 우리 그림이 항상 외세에 흔들리면서 불안정 상태를 계속해 왔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일었는데요. 전통적인 화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이는 화가들이 있어 사군자화는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96539573ECAFE315439.jpg" alt="김지하, &lt;난초&gt; 종이에 수묵, 30.5*17.8cm , 개인소장" width="242" height="42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의 묵란을 보면 춤을 추는 듯, 흐느적거리는 듯, 바람결에 휘날리는 긴 난 잎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그는 표연히 바람에 휘날리는 난이라는 뜻으로 ‘표연란(飄然蘭)’이라 하고 흉중의 한(恨)을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평론가 유홍준 교수는 김지하의 긴 한 잎은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역사적 체험이자 삶의 농축된 소망의 원형질로서의 한을 담아낼, 난 그림에서 지향할 형식의 틀이라고 해석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29C839573ECAFF242BD5.jpg" alt="장일순,&lt;묵란&gt; 종이에 수묵 30.5*48.5cm, 개인 소장" width="322" height="25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 묵란과 같은 듯 다른 느낌을 무위당(無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의 &lt;묵란&gt;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김지하 난의 정갈하면서도 부드러운 먹의 느낌은 장일순으로 부터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전통적인 난법을 변형하여 일부러 난을 그리려 하지 않은 듯 몇 번의 붓놀림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내었죠. 그의 호인 무위당(無爲堂)은 그의 삶의 철학만이 아니라 그림에도 적용되는 듯합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97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477539573ECAFF07161C.jpg" alt="박영기, &lt;묵죽&gt; 종이에 수묵, 개인 소장" width="197" height="70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와 장일순 묵란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주에서 활동한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 1874~1949)과 그 손자인 화강(化江) 박영기(朴永麒, 1922~?)에 이릅니다. 박영기의 사군자 또한 전반적으로 깔끔한 묵법을 특징으로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그의 &lt;묵죽&gt;에서 군더더기 없는 먹과 필선으로 그은 부러진 대나무 한 그루는 정갈하고 매끄러운 먹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묵죽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거칠거나 억세지 않아도 충분히 강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은데요. 같은 표현은 박영기의 조부인 차강 박기정의 묵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채색인물화로 유명한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은 중년 이후 그림 전반을 수묵의 문인화풍으로 전환하면서 사군자화를 그 본령을 삼아 즐겨 그렸습니다. 우리 전통화풍과 함께 여러 대가들을 깊이 탐구하여 터득한 현대적인 구도와 적극적인 색채감 등을 자기화 함으로써 전통적 소재를 현대화 할 수 있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3FDF39573ECB000EB55F.jpg" alt="장우성,&lt;국화&gt; 1998년 종이에 수묵담채 34*43.5cm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 width="32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1990년대 이후 그는 만년에 까지 여러 점의 국화도를 그렸는데, 만개한 국화 몇 송이와 간략한 화제를 적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소재에 집중하면서도 여백을 충분히 남겨 여유로운 화면을 연출했습니다. 87세의 노화가가 쓴 “봄에 먹은 마음 그대로 서릿 가을을 견딘다.”는 화제는 단지 국화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화가 송수남(1938~2013)의 &lt;매화&gt; 또한 홍매의 전통을 이어 부채에 그린 것입니다. 만개한 홍매의 화려함은 19세기 이후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서 익히 보아 왔지만, 줄기와 꽃에 가한 변화 없는 필선의 단조로움이 도리어 현대적인 느낌을 주죠.</p>
<h2 class="o_title">현대적 변용</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3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94E35573ECC770ABA6B.jpg" alt="김환기, &lt;매화와 항아리&gt; 1957년, 캔버스에 유채, 55*35cm, 환기미술관 소장 " width="243" height="33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수묵으로 간단하게 그린 그림’이라 했던 사군자화는 유화의 소재로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수묵(水墨)과 모필(毛筆)에서 유채로 재료가 바뀌면서 사군자는 그에 맞는 새로운 형태감을 찾아는데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모더니즘의 틀 안에 조선 미술의 미의식을 결합시켜내는 것을 자신의 예술과제로 삼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서양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생각하였다. 그 중 하나가 &lt;매화와 항아리&gt;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김환기에 있어서 이들은 ‘구체화 된 전통’이었다. 그는 이들의 독특한 특징을 단순화하여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금씩 변형시키거나 과장하여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매화, 달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09335573ECC78033B1F.jpg" alt="유양옥&lt;선면매조&gt; 종이에 채색, 34.5*34.5cm, 개인 소장" width="249" height="38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유양옥(柳良玉, 1944~2012)의 &lt;선면매조&gt;에서 청록색의 바탕에 날아가는 새나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김환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아 꺾이고 옹이진 줄기에 간략하게 그린 흰 매화의 깔끔한 조화는 전통적 상징성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조선시대 매화를 좋아한 사람들은 비단이나 밀랍(蜜蠟) 즉 벌집에서 얻은 납으로 매화를 만들어 쉬이 지는 꽃의 아쉬움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벌이 꽃에서 채취하는 꿀의 부산물인 밀랍으로 꽃을 만드니 꽃이 돌고 돌아 다시 꽃이 된다는 뜻으로 윤회매(輪回梅)라 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은 것일까요? 사군자를 철 조각으로 표현한 조환의 작품들이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사군자 영상작업은 전통의 재창조라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43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7D4135573ECC78244370.jpg" alt="조환 &lt;무제&gt; 2015년 철과 폴리우레탄 290*578*15cm" width="43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는 단순한 구성과 서예의 기법을 활용한 문인취향의 특성으로 인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구성 때문에 문인화의 입문 과정쯤으로 생각하기도 하나, 소재의 상징성이나 사군자화의 역사성 뿐 아니라 수묵의 흑백이 주는 현대적 조형성 등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적지 않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얼마 남지 않은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 전시가<br />
종료되기 전 포스코미술관에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p>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5편. 서리를 이긴 은은한 향취의 국화 그림</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5%ed%8e%b8-%ec%84%9c%eb%a6%ac%eb%a5%bc-%ec%9d%b4%ea%b8%b4-%ec%9d%80%ec%9d%80%ed%95%9c-%ed%96%a5%ec%b7%a8/</link>
				<pubDate>Wed, 11 May 2016 07:00: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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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 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6297485731709305C641.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width="650" height="371"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 이야기! &#8216;국화와 국화 그림의 이야기&#8217;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보실까요~?</p>
<h2 class="o_title">세속과 벗하지 않는 은자</h2>
<p>옛 문인들은 국화 한 포기를 얻으면 봄, 여름 고이 갈무리하여 가을에 홀로 피어나는 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고, 화분에 가득 담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흔한 꽃이지만 의미도 깊고 귀한 국화를 언제나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국화 그림인데요. 인내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상징으로서 시문과 서화는 물론 장식미술의 소재로서도 국화는 사랑을 받았습니다.</p>
<p>조선시대 초·중기까지만 해도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궁중을 중심으로 국화를 감상하고, 국화주를 마시며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주고받는 행사를 했었습니다. 조선시대 일찍부터 국화 그림이 그려진 기록은 있지만 실제로 그림이 남아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18114C57316E562C15EB.jpg" alt="홍진구,&lt;국화&gt; 종이에 채색, 37.6*32.6cm, 간송미술관 소장" width="259" height="40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17세기에 활동하였던 홍진구의 국화 그림은 조선시대 국화 그림 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입니다. 왼편 하단에서 피어난 한 그루의 국화와 나리꽃처럼 생긴 붉은 꽃을 함께 그린 것인데요. 가지와 잎은 먹을 툭툭 찍고 농묵으로 잎맥을 그려 자연스러운 국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왼편 상단에 쓴 방장산옹사(方丈山翁寫)라는 호 때문에 홍진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p>
<p>국화에는 여러 색이 있지만 옛날에는 어떤 색깔보다도 노란 국화를 으뜸으로 생각했다고 하죠. 노란색은 다른 색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대지의 색깔로서 음양오행에서는 중앙을 상징하고, 이는 곧 왕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수묵을 위주로 하였지만 담채를 더하여 맑은 채색이 주는 담백함과 섬세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야위고 소박한 국화꽃은 누구와도 벗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순박함이 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3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18AD4C57316E502B2506.jpg" alt="윤두서, &lt;괴석죽국&gt; 종이에 수묵, 27.5*56cm, 개인소장" width="339" height="21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묵국도가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인데요. 국화 그림은 국화만 단독으로 그린 경우보다는 괴석이나 대나무 등과 국화를 함께 그린 경우가 많습니다. 자화상과 풍속화로 유명한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lt;괴석죽국(怪石竹菊)&gt;은 부채에 괴석, 대나무와 함께 국화를 그린 것입니다.</p>
<p>꽃잎 하나하나를 가는 선으로 꼼꼼히 그리고 이에 호분을칠하여 흰 국화의 느낌을 살렸죠. 괴석이나 대나무, 국화가 거의 같은 비중으로 그려져 있고, 국화에는 난인지 혹은 들풀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기다란 잎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괴석이나 대나무와 함께 국화를 그리는 형식은 당시 유행하던 여러 화보(畵譜)에서도 예로서 다루어지던 것입니다.</p>
<p>윤두서의 경우 『고씨화보(顧氏畵譜)』를 소장하였을 뿐 아니라, 화보를 보면서 그림 공부를 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요. 국화 그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p>
<h2 class="o_title">서리를 이겨낸 절개</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4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110C4C57316E56333029.jpg" alt="허필, &lt;국화&gt; 종이에 옅은 채색, 26.7*18.7cm, 서울대박물관 소장" width="254" height="37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18세기 문인 화가 연객(烟客) 허필(許佖, 1709∼몰년 미상)의 〈국화(菊花)〉는 단장을 한 듯 꽃송이가 단정한데요. 중앙에는 가장 큰 가지를 두고 그 아래에 조금씩 키 작은 가지를 두어 균형을 잡았고, 땅에는 잡풀을 함께 그려 안정감 있는 구도를 이루도록 했죠. 수묵에 연한 담채를 하여 크게 공들여 그린 것 같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향기가 풍기는 것은 그의 얽매이지 않는 성품 때문일 것입니다.</p>
<p>시 읊기를 좋아했고 전서와 예서를 잘 썼던 허필은 가난한 오두막집 비탈진 계단에 갖가지 국화를 줄지어 심어놓고 그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세상일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리를 떠난 선비와 국화는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친구인 모양입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7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1A414C57316E5222230B.jpg" alt="정조, &lt;야국&gt; 비단에 수묵, 51.4*84.6cm, 동국대박물관 소장" width="257" height="426"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조선 22대 임금인 정조(正祖, 1752~1800)의 &lt;야국(野菊)&gt;은 담백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려진 국화와 풀벌레의 재치 있는 표현으로 문예부흥을 주도해나간 슬기로운 군왕의 면모가 엿보입니다. 상하로 긴 화면 좌측 중앙에 둥근 바위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두 포기, 가운데 낮게 한 무리의 국화가 피어있죠.</p>
<p>꽃은 엷은 먹으로 부드럽게 그린 반면 잎은 끝이 날카롭고 좀 더 진하게 표현했는데요. 때로는 진하게 때로는 연하게 먹이 마치 살아있는 듯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생동감이 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4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33C14C57316E511204B0.jpg" alt="이인상&lt;병국도&gt; 종이에 먹, 28.6*1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54" height="46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데, 말라비틀어진 국화 한 포기를 그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18세기에 활동하였던 문인 화가 이인상(李麟祥, 1710~1760)입니다. 그는 갈필로 스케치를 하듯이 고개 숙인 국화 한 포기를 그리고, 이에 ‘병든 국화를 겨울날 그렸다(南溪冬日寫病菊)’고 써놓았죠.</p>
<p>그런데 시든 국화 한 그루는 마치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요. 이인상은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출이었기 때문에 높은 벼슬은 할 수가 없어서 글씨와 그림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p>
<p>18세기에는 국화재배가 늘고, 이를 완상하는 문화도 발달하면서 국화도가 급격히 많아졌는데요. 국화는 대부분 단독으로 그리기보다는 바위나 대나무, 들풀과 함께 그려 그 의미를 더하고 구도상 안정감을 더해주었죠. 국화 종류가 많아진 만큼 그림 속의 국화도 꽃잎이 길고 짧고, 가늘기도 하고 도톰하기도 하면서 국화 그림도 다채롭게 전개되었습니다.</p>
<h2 class="o_title">동쪽 울타리에 핀 아름다운 꽃</h2>
<p>19세기는 조선시대 회화 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국화도에도 형식 면에서나 화풍에 여러 변화를 보였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형식상의 변화는 화폭이 상하로 길어지고 제시가 많아진다는 점인데요. 필치가 분방해지고 장식적인 경향을 띠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1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19DB4C57316E512A2388.jpg" alt="윤제홍,&lt;난국괴석도&gt; 종이에 수묵, 24.5*38cm, 개인 소장" width="312" height="21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 1764～1840)의 &lt;난국괴석도(蘭菊怪石圖)&gt;는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린 듯 독특한 필법으로 그의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인데요. 마치 동물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처럼 뭉쳐진 바위 아래서 뻗어 나온 국화와 난의 형태는 선뜻 수긍할 수 없는 파격의 미가 있습니다. 괴석과 국화도 독특하지만 오른 편에서 쓰기 시작하여 왼편으로 연결되게 한 화제 또한 파격적이죠.</p>
<p>“윤경도 제홍은 읊노라 난초는 빼어나고 국화는 향기롭네. 가인을 그리워함이여, 능히 잊지 못하리(尹景道濟弘言. 蘭有秀兮, 菊有芳. 懷佳人兮, 未能忘).”라 했는데요. 화제를 쓴 글씨도 그림과 어울려 개성을 더해줍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C0C4C57316E5028069C.jpg" alt="안중식,&lt;동리가색&gt; 종이에 수묵, 17*80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 width="246" height="52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집을 둘러친 울타리는 사방에 있음에도 유난히 동쪽 울타리에 핀 국화를 그렸다는 그림이 많습니다. 이는 중국 육조시대 시인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음주(飮酒)』라는 시 중에 “동쪽 울타리에 핀 국화 한 송이를 꺾어, 망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는 구절 때문입니다. 벼슬을 버리고 한가로이 살아가는 그의 삶의 한 장을 보여주는 구절로 많은 선비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고, 국화는 응당 동쪽 울타리에 피어있는 것처럼 인식되었죠.</p>
<p>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lt;동리가색(東籬佳色)&gt;을 보면 괴석과 국화, 들풀이 어울린 구도는 앞서 많이 보던 그림과 비슷하지만 국화 꽃잎이 유난히 길고 꽃송이도 큽니다. 꽃이 큰 국화 그림은 그의 작품에서뿐 아니라 같은 시기 긍석(肯石) 김진만(金鎭萬, 1876~1934)이나 화산(華山) 김일(金鎰, 미상~1934이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어서 이 시기 국화도의 특징으로 보입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5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8384C57316E4F1E27AA.jpg" alt="김진만&lt;석국&gt;종이에 먹 140*34cm 개인 소장" width="245" height="74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또 한편으로는 화가들이 국화를 선비들의 뜻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식물로만 그린 것이 아니라 보기에 좋은 크고 탐스러운 것을 선호한 것도 한 이유일 것입니다.</p>
<p>국화도는 근대로 이어지면서 군자나 은일을 상징하던 모습보다는 장식적인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요. 국화를 표현하는 방식은 시대나 화가에 따라 다르지만 복잡한 세상을 떠나 조용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벗이 되어 올해도 어느 울타리 아래서 말없이 피어날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22334457397B0E353150.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가 소개해드리는 국화와 국화 그림의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br />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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