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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난그림 &#8211; 포스코뉴스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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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8편.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변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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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May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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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35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86E39573ECAFF328266.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포스터" width="635" height="36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 &#8216;현대적으로 변용된 사군자&#8217;에 대해 들려드릴까 합니다.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근대 이후 사군자화의 변화</h2>
<p style="text-align: justify;">오랜동안 군자의 식물로 애호되었고, 또 생활 속에 스며들어 각종 문양의 소재로도 쓰였던 사군자는 그 개념은 있었지만 용어가 보편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입니다. 사군자라는 용어가 매·란·국·죽을 가리키며 직접적으로 사용된 예는 1922년부터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 규정’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 전람회의 사군자 규정에 “주로 먹을 사용한 간단한 그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금껏 ‘매죽’ 혹은 ‘난죽’이라 부르던 것이 최초로 ‘사군자’라는 용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죠.</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그 배경에는 아픈 역사가 함께 합니다.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부는 조선 사람이 홀로 무대를 휩쓸었고,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시대 상황에서 사군자화는 절개와 인고의 상징성으로 인해 크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회가 거듭되자 총독부는 동양화부에 속해있던 사군자를 ‘서부(書部)’로 넣었다가 점차로 입선작을 줄여 아예 없애버린 것입니다. 사군자가 민족사상을 이어간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이후 조선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1939년에 열린 조선서도전람회와 1940년에 열린 문인서화전람회에 서예와 함께 전시됨으로써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35A139573ECAFE1717FF.jpg" alt="윤용구, 사군자 10폭 병풍 종이의 수묵, 각 127*34cm 개인소장" width="628" height="33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근대기에는 사군자 중에서도 ‘난죽’(蘭竹)이 사군자를 대표하는 식물이 되었고, 남아 있는 작품 또한 난죽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간단하다고해서 쉬운 것은 아니나 사군자를 배우는 과정에서의 편의성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를 계절에 맞추어 봄-매화, 여름-난, 가을-국화, 겨울-대나무로 보는 것도 중국 사람들이 겨울 매화, 봄 대나무, 여름 난, 가을 국화라 했던 것과 다른 우리만의 특징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에 대한 애호 분위기로 당시 각 신문의 신년 휘호에 사군자화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형미와 함께 상징성이 큰 사군자화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다짐을 함께 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을 것입니다. 역으로 신년 휘호의 사군자화가 사군자를 대중과 더욱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1900년대 초반 사군자화는 이처럼 급격히 대중화되었고, 사군자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p>
<h2 class="o_title">전통의 새로운 해석</h2>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가 대중화되면서 사군자화의 정신성은 점차 약화되었고,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모 사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한동안 답습되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구성 때문에 필법을 익히기 위한 그림의 입문과정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없지 않았죠.</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한 가운데 몇몇 동양화가들 사이에서 당시 우리 그림이 항상 외세에 흔들리면서 불안정 상태를 계속해 왔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일었는데요. 전통적인 화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이는 화가들이 있어 사군자화는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96539573ECAFE315439.jpg" alt="김지하, &lt;난초&gt; 종이에 수묵, 30.5*17.8cm , 개인소장" width="242" height="42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의 묵란을 보면 춤을 추는 듯, 흐느적거리는 듯, 바람결에 휘날리는 긴 난 잎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그는 표연히 바람에 휘날리는 난이라는 뜻으로 ‘표연란(飄然蘭)’이라 하고 흉중의 한(恨)을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평론가 유홍준 교수는 김지하의 긴 한 잎은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역사적 체험이자 삶의 농축된 소망의 원형질로서의 한을 담아낼, 난 그림에서 지향할 형식의 틀이라고 해석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29C839573ECAFF242BD5.jpg" alt="장일순,&lt;묵란&gt; 종이에 수묵 30.5*48.5cm, 개인 소장" width="322" height="25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 묵란과 같은 듯 다른 느낌을 무위당(無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의 &lt;묵란&gt;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김지하 난의 정갈하면서도 부드러운 먹의 느낌은 장일순으로 부터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전통적인 난법을 변형하여 일부러 난을 그리려 하지 않은 듯 몇 번의 붓놀림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내었죠. 그의 호인 무위당(無爲堂)은 그의 삶의 철학만이 아니라 그림에도 적용되는 듯합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97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477539573ECAFF07161C.jpg" alt="박영기, &lt;묵죽&gt; 종이에 수묵, 개인 소장" width="197" height="70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와 장일순 묵란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주에서 활동한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 1874~1949)과 그 손자인 화강(化江) 박영기(朴永麒, 1922~?)에 이릅니다. 박영기의 사군자 또한 전반적으로 깔끔한 묵법을 특징으로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그의 &lt;묵죽&gt;에서 군더더기 없는 먹과 필선으로 그은 부러진 대나무 한 그루는 정갈하고 매끄러운 먹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묵죽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거칠거나 억세지 않아도 충분히 강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은데요. 같은 표현은 박영기의 조부인 차강 박기정의 묵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채색인물화로 유명한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은 중년 이후 그림 전반을 수묵의 문인화풍으로 전환하면서 사군자화를 그 본령을 삼아 즐겨 그렸습니다. 우리 전통화풍과 함께 여러 대가들을 깊이 탐구하여 터득한 현대적인 구도와 적극적인 색채감 등을 자기화 함으로써 전통적 소재를 현대화 할 수 있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3FDF39573ECB000EB55F.jpg" alt="장우성,&lt;국화&gt; 1998년 종이에 수묵담채 34*43.5cm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 width="32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1990년대 이후 그는 만년에 까지 여러 점의 국화도를 그렸는데, 만개한 국화 몇 송이와 간략한 화제를 적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소재에 집중하면서도 여백을 충분히 남겨 여유로운 화면을 연출했습니다. 87세의 노화가가 쓴 “봄에 먹은 마음 그대로 서릿 가을을 견딘다.”는 화제는 단지 국화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화가 송수남(1938~2013)의 &lt;매화&gt; 또한 홍매의 전통을 이어 부채에 그린 것입니다. 만개한 홍매의 화려함은 19세기 이후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서 익히 보아 왔지만, 줄기와 꽃에 가한 변화 없는 필선의 단조로움이 도리어 현대적인 느낌을 주죠.</p>
<h2 class="o_title">현대적 변용</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3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94E35573ECC770ABA6B.jpg" alt="김환기, &lt;매화와 항아리&gt; 1957년, 캔버스에 유채, 55*35cm, 환기미술관 소장 " width="243" height="33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수묵으로 간단하게 그린 그림’이라 했던 사군자화는 유화의 소재로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수묵(水墨)과 모필(毛筆)에서 유채로 재료가 바뀌면서 사군자는 그에 맞는 새로운 형태감을 찾아는데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모더니즘의 틀 안에 조선 미술의 미의식을 결합시켜내는 것을 자신의 예술과제로 삼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서양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생각하였다. 그 중 하나가 &lt;매화와 항아리&gt;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김환기에 있어서 이들은 ‘구체화 된 전통’이었다. 그는 이들의 독특한 특징을 단순화하여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금씩 변형시키거나 과장하여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매화, 달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09335573ECC78033B1F.jpg" alt="유양옥&lt;선면매조&gt; 종이에 채색, 34.5*34.5cm, 개인 소장" width="249" height="38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유양옥(柳良玉, 1944~2012)의 &lt;선면매조&gt;에서 청록색의 바탕에 날아가는 새나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김환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아 꺾이고 옹이진 줄기에 간략하게 그린 흰 매화의 깔끔한 조화는 전통적 상징성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조선시대 매화를 좋아한 사람들은 비단이나 밀랍(蜜蠟) 즉 벌집에서 얻은 납으로 매화를 만들어 쉬이 지는 꽃의 아쉬움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벌이 꽃에서 채취하는 꿀의 부산물인 밀랍으로 꽃을 만드니 꽃이 돌고 돌아 다시 꽃이 된다는 뜻으로 윤회매(輪回梅)라 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은 것일까요? 사군자를 철 조각으로 표현한 조환의 작품들이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사군자 영상작업은 전통의 재창조라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43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7D4135573ECC78244370.jpg" alt="조환 &lt;무제&gt; 2015년 철과 폴리우레탄 290*578*15cm" width="43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는 단순한 구성과 서예의 기법을 활용한 문인취향의 특성으로 인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구성 때문에 문인화의 입문 과정쯤으로 생각하기도 하나, 소재의 상징성이나 사군자화의 역사성 뿐 아니라 수묵의 흑백이 주는 현대적 조형성 등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적지 않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얼마 남지 않은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 전시가<br />
종료되기 전 포스코미술관에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p>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4편. 맑은 향기 머금은 난 그림</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4%ed%8e%b8-%eb%a7%91%ec%9d%80-%ed%96%a5%ea%b8%b0-%eb%a8%b8%ea%b8%88%ec%9d%80-%eb%82%9c-%ea%b7%b8/</link>
				<pubDate>Wed, 04 May 2016 10:06: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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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 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네 번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69274557286030170CAB.jpg" alt="&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 width="650" height="371"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네 번째 이야기! 난과 난 그림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절제된 엄숙미</h2>
<p>난은 꽃 중의 군자로 일컬어져 고결함을 상징하는 오랜 세월 동안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죠. 오늘날에도 동양화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시작할 만큼 필획의 기본으로 삼는 문인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난은 고결한 덕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옛 문인들은 난 그리는 자세와 기법에 삼엄한 수칙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법식에 따라 그리는 것을 꺼렸고, ‘난을 친다’고 하는 것처럼 머뭇거림 없는 운필로 내면의 의취(意趣)를 표출하였죠. 따라서 묵란의 성패는 형태의 재현이라기보다 형상의 바깥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6EB93B572868E906D861.jpg" alt="이정, &lt;묵란&gt; (17세기, 비단에 금니, 크기미상, 《화원별집》소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385" height="478" /><figcaption>이정, &lt;묵란&gt; (17세기, 비단에 금니, 크기미상, 《화원별집》소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div>
<p>조선시대 난 그림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그려졌던 것으로 보이나 기록에 의할 뿐 조선 초기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본격적인 묵란 작품은 조선 중기 묵죽의 대가로 알려진 탄은(灘隱) 이정(李霆, 1541∼1622), 화원 화가였던 이징(李澄, 1581∼?), 그리고 목판화로 남아있는 선조(宣祖)의 묵란 등입니다.</p>
<p>이정의 &lt;묵란(墨蘭)&gt;은 검은 비단에 금물로 바람에 날리는 난 한 포기를 묘사한 것인데요. 좌측 하단 지면에서부터 화면을 꽉 채운 대각선 구도를 보이며, 비스듬히 길고 매끄럽게 뻗은 난엽은 좌우대칭으로 균형을 이룹니다. 중간중간 붓을 돌리듯 떼었다 다시 이어가는 삼전법(三轉法)으로 끊어질 듯 이어져 보일 만큼 필선의 굵기에 변화를 주었죠. 방사 형태로 뻗은 잎은 시원스러운 리듬감이 있고, 잎 사이에 짧게 세 송이 꽃을 그려 넣었는데요. 난 꽃은 정세하고 강한 필선으로 꼼꼼하게 묘사하였습니다.</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63043B572868E9127256.jpg" alt="이징, &lt;묵란&gt; (종이에 먹, 29.8×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44" height="374" /><figcaption>이징, &lt;묵란&gt; (종이에 먹, 29.8×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div>
<p>이징의 작품으로 전하는 &lt;묵란(墨蘭)&gt; 역시 이정의 묵란과 비슷한 형태감을 보입니다. 이징의 묵란은 현전 작품이 많지 않은 조선시대 전반기 난 그림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후에 보게 될 다른 작품보다는 좀  둔한 느낌을 주지만 고졸한 기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p>
<p>이징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문인 택당(澤堂) 이식(李植, 1584∼1647)의 시 &lt;난&gt;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난에 대한 인식을 살필 수 있습니다.</p>
<p>난이 속세의 티끌을 묻히는 것을 싫어해 산중 바위 골짜기 물가에 홀로 피어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자태는 청초하고 향은 그윽하여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고고한 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이는 난에 대한 오랜 찬사입니다. 잡풀 속에서도 그윽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난의 품격은 덕을 갖춘 사람과 같은 것이죠.</p>
<div style="background-color: #dbe8fb; margin-bottom: 1.6em; border: #79a5e4 1px dashed; padding: 10px;">
<ul>
<li>如傀人間被俗塵     인간이 속세에 물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li>
<li>叢生岩谷澗之賓     바위 골짜기 물가에 손님으로 살고 있네.</li>
<li>雖有令色如嬌女     비록 고운 색은 아름다운 여인과 같지만</li>
<li>自有幽香似德人     절로 향기 그윽하여 덕인을 닮았구나.</li>
</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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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o_title">다채로운 변화 속의 격조</h2>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74133457286C6405E3EE.jpg" alt="강세황, &lt;선면묵란&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각 21.6×56.1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width="650" height="324" /><figcaption>강세황, &lt;선면묵란&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각 21.6×56.1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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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난 그리는 법에 의하면 난 잎이 자연스럽게 휘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당두(蟷頭), 잎의 끝을 뾰족하게 빼는 서미(鼠尾), 두 잎이 교차할 때 이루는 모양이 봉황의 눈과 같다 하는 봉안(鳳眼) 등 여러 법식이 있는데요. 이러한 기본 법칙에 따라 운필을 하되 화가들은 이를 나름대로 운용하여 각자 개성 있는 난을 만들게 됩니다. 같은 모양의 글씨를 쓰면서도 각자의 필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죠.</p>
<p>18세기 문인 강세황의 &lt;묵란(墨蘭)&gt;은 잎을 지나치게 빠르게 하거나 기교를 부린 것이 아닙니다. 대여섯 개의 잎과 몇 개의 꽃으로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렸는데요. 한자락 미풍이 살며시 지나간 듯 부드러운 잎은 단아한 격조를 살린 문인화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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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02D3B572868EA02CF78.jpg" alt="임희지, &lt;난죽석도&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87.1×42.4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width="410" height="841" /><figcaption>임희지, &lt;난죽석도&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87.1×42.4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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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난은 군자의 꽃으로 불리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사람이나 미인의 향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임희지(林熙之, 1765~?)의 난 그림은 마치 미인을 염두에 두고 그린 듯 빼어난 모습이 요염하기까지 하죠. 임희지의 &lt;난죽석도(蘭竹石圖)&gt;는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나온 괴석과 괴석 뒤로 뻗어 나온 대나무, 그리고 괴석 아래 활달하고 힘찬 난이 자신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왼편에는 이 세 가지를 한 폭에 그린 뜻을 적었습니다.</p>
<p>“원장(元章)의 돌, 자유(子猷)의 대나무, 좌사(左史)의 난초, 이를 몽땅 그대에게 주는데 그대는 무엇으로 보답하려는가?”</p>
<p>원장은 북송 대 문인 화가인 미불(米芾)을 가리킨 자인데요. 그는 돌을 좋아하여 괴석을 향해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유는 동진의 서예가 왕휘지(王徽之)로서 하룻밤도 대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묵을 수 없다며 처소에 대를 옮겨 심게 했다는 인물이죠. 좌사는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을 일컫습니다. 이들을 모두 한 폭에 그려 석(石), 난(蘭), 죽(竹)을 한 번에 준다고 한 호기로운 화제들이죠.</p>
<p>18세기 들어 난은 이전 시기에 비해 작품도 많아졌을 뿐 아니라 화풍도 다채로워졌는데요. 강세황, 이인상, 임희지의 난 모두가 다른 느낌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들의 묵란에서는 새로 발간되어 우리나라에서 유통되었던 여러 화보들의 영향도 감지되지만, 화가 각각은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독특한 묵란화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p>
<h2 class="o_title">묵란화의 전성기</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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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45DA3B572868E71F1CA8.jpg" alt="김정희, &lt;불이선란&gt; (종이에 수묵, 55×31.1cm, 개인 소장)" width="410" height="710" /><figcaption>김정희, &lt;불이선란&gt; (종이에 수묵, 55×31.1cm, 개인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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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전 시기부터 난 그림이 있었지만, 묵란에 일가를 이룬 전문 화가들이 나타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난을 잘 그렸을 뿐 아니라, 난법을 논하였고, 《난맹첩》을 통해 다양한 난법을 후배들에게 전하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그의 난법을 배운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이하응(李昰應, 1820~1898) 등에 의해 우리나라 묵란화는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p>
<p>추사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로 유명한 김정희의 &lt;불이선란(不二禪蘭)&gt;은 난 잎은 거친 붓으로 담담하게 몇 줄을 그었으나 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치우친 난의 초탈한 경지를 드러내는 듯하죠.</p>
<p>김정희는 이 그림에 스스로 쓰기를 “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문득 그려낸 것”이라 하였습니다. 가슴 속에 20년간 응축된 난의 실체가 이러한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죠.</p>
<p>또한 이는 유마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설법하였던 선(禪)의 경지를 난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요. 그래서 이 난을 선과 난이 서로 둘이 아니라는 뜻의 ‘불이선란’이라고 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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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2B553457286C65353ED0.jpg" alt="김정희, &lt;시우란&gt; (종이에 수묵, 23×85cm, 개인 소장)" width="650" height="174" /><figcaption>김정희, &lt;시우란&gt; (종이에 수묵, 23×85cm, 개인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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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정희는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에 ‘난은 그림 그리는 법으로 해서는 안되며, 서법으로 난법을 삼아야 하며, 삼전법(三轉法)을 적절히 써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들 상우를 위해 그려 주었다고 전해지는 그림이 &lt;시우란(示佑蘭)&gt;이죠.</p>
<p>김정희가 19세기에 양반 문인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조희룡은 중인 화가들의 대표적인 화가였는데요. 조희룡은 김정희의 글씨체를 모방하기도 하였고 난 그림도 김정희의 난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김정희와 비슷하지만 조희룡의 글씨는 김정희 추사체의 각진 예서보다는 더 둥글고 부드러운 맛이 있습니다. 난 그림은 마치 난 잎을 들에 난 풀처럼 흐드러지게 그려 현란함과 화려함을 보여줍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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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6DF93B572868E8342191.jpg" alt="이하응,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49×66cm, 인주문화재단 소장)" width="410" height="920" /><figcaption>이하응,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49×66cm, 인주문화재단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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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조희룡과 마찬가지로 김정희의 난 그림을 배웠다고 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lt;묵란화(墨蘭畵)&gt;는 여러 형식을 보이는데요. 한두 포기의 난을 독립적으로 그리거나 다른 기물과 함께 그리기도 하였는데, 위아래로 긴 화폭에 몇 무리의 난을 바위와 함께 그린 형식이 가장 많습니다. 난엽은 잎 끝이 가늘고 변화가 심한 특징을 보이죠.</p>
<p>김정희 묵란의 투박하고 필획의 변화가 적은 특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김정희는 예서를 바탕으로 사란(寫蘭)을 한 반면, 이하응은 초서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찾기도 합니다.</p>
<p>가는 난이 절벽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김정희와 이하응의 필의(筆意)를 철저하게 따라 그렸던 김응원의 &lt;묵란(墨蘭)&gt;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p>
<p>그는 당시 이하응에게 들어온 그림 청탁을 대신 그렸다고 할 정도로 이하응과 유사한 면을 보입니다. 그러나 김응원의 묵란은 이하응에 비해 힘 있는 필선과 활달함으로 그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보이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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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76713B572868E81BB5CD.jpg" alt="민영익,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29.5×59cm, 인주문화재단 소장 소장)" width="410" height="886" /><figcaption>민영익,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29.5×59cm, 인주문화재단 소장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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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같은 시기 민영익의 &lt;묵란(墨蘭)&gt;은 위태로운 나라를 등지고 타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그의 고뇌와 우울한 심경을 드러내는데요. 마치 잘린 듯 끝이 뭉툭한 난 잎은 현실에서의 좌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 같죠. 더구나 그의 묵란 중 뿌리를 드러낸 &lt;노근묵란(露根墨蘭)&gt;은 뿌리내릴 땅이 없는 나라 잃은 설움을 그대로 드러낸 듯합니다.</p>
<p>김정희, 이하응 등 19세기 대가들의 활약으로 크게 유행하게 된 묵란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근래에는 난 재배법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난을 기르고 여러 의미로 선물하기도 합니다.</p>
<p>풀숲 속에 묻혀서도 향기를 발하던 옛적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난 잎의 빼어남과 꽃의 고결함으로 맑고 향기롭게 살려는 사람들의 이상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가 소개해 드리는 난과 난의 그림에 얽힌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br />
다음 편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1C339570F2BC512C63D.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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