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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한민국 명장 &#8211; 포스코뉴스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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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한민국 명장 인터뷰] #2. 삶의 기로마다 성찰의 물음표를 던지다, 김공영 명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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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Sep 2015 17:27: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사람과문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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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대한민국 명장&#8217;. 산업현장 종사자 가운데 최고의 숙련 기술자에게 수여하는 상이자, 기술인들 중 &#8216;최정점&#8217;에게 주어지는 칭호인데요. 바로 이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자랑스러운 포스코인을 차례로 만나보는 &#8216;대한민국 명장]]></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span id="fontsize"></p>
<div class="tt_article_useless_p_margin">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5303F44560B9F3417916C.jpg" style="cursor: pointer;max-width:100%;height:auto" onclick="open_img('http://cfile10.uf.tistory.com/original/25303F44560B9F3417916C')" width="650" height="310" filename="타이틀.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8216;대한민국 명장&#8217;. 산업현장 종사자 가운데 최고의 숙련 기술자에게 수여하는 상이자, 기술인들 중 &#8216;최정점&#8217;에게 주어지는 칭호인데요. 바로 이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자랑스러운 포스코인을 차례로 만나보는 &#8216;대한민국 명장 인터뷰&#8217; 시리즈,그 두 번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p>
</p>
<p>
			이번에는 포철공고 재학 시절부터 &#8216;철강 장인&#8217;을 꿈꾸며 외길을 걸어온 김공영 명장을 만나볼 텐데요. 그가 명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부터 함께 보시죠!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
		</p>
</p>
<h2 class="o_title">명장과의 첫 만남, 그의 손을 잡다</h2>
</p>
<div style="BORDER-BOTTOM: #79a5e4 1px dashed; BORDER-LEFT: #79a5e4 1px dashed; PADDING-BOTTOM: 10px; BACKGROUND-COLOR: #dbe8fb;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BORDER-TOP: #79a5e4 1px dashed; BORDER-RIGHT: #79a5e4 1px dashed; PADDING-TOP: 10px" class=txc-textbox>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170px;WIDTH: 170px; HEIGHT: 219px; MARGIN-RIGHT: 1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772CC3E560BA30E16D225.jpg" style="cursor: pointer;max-width:100%;height:auto" onclick="open_img('http://cfile7.uf.tistory.com/original/2772CC3E560BA30E16D225')" width="170" height="219" filename="1.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strong><span style="COLOR: #4174d9">김공영 (포항 스테인리스제강부 4제강공장)</span></strong>
			</p>
<p>
				<strong></strong>
			</p>
<p>
				1987년 포스코에 입사. 포철공고 재학 시절 ‘우향우 정신’에 크게 감명받아 철강 장인의 꿈을 품었습니다. 스테인리스강 생산이 시작된 89년 스테인리스 AOD 창설 멤버로 참여하여 현재는 전로를 이용한 스테인리스강 취련작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내에서는 학습동아리인 마이스터를 결성하고 사외에서는 직무전문가로 위촉되어 국가직무능력표준을 제·개정하는데 기여했습니다.
			</p>
<p style="FLOAT: left; CLEAR: both">
</p></div>
</p>
<p>
			모든 비즈니스 만남은 악수로 시작됩니다. 김공영 명장과의 만남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그가 덥석 건넨 손을 잡는 그 순간, 의례적인 악수는 이례적인 장악이 돼버렸습니다. 투박한 듯 섬세하면서 뭉툭한 듯 예리한 명장의 손은 그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죠.
		</p>
</p>
<p>
			이렇듯 불과 3초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제 머릿속을 메워버린 물음표는 인터뷰 내내 그가 걸어온 여정을 더듬어 가는 지팡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줄곧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선사했던 그의 삶 또한 스스로와 세상에 대한 물음표로 점철돼 있었습니다. 근무복은 황색에서 청색으로 바뀌었을지언정 김 명장은 스테인리스 제강 외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마주한 모든 것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왔습니다.
		</p>
</p>
<h2 class="o_title">임전무퇴의 우향우 정신, 명장의 꿈을 품다!</h2>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432CD42560BA583051ECD.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410" filename="2_메인썸네일_650x430.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그가 겨눈 첫 번째 과녁은 ‘우향우 정신’이었습니다. 포철공고 재학 시절, 독후감 주제로 던져진 우향우 정신은 안 그래도 혈기왕성하던 고등학교 남학생의 가슴에 기름을 끼얹었다는데요. 국익을 위해 죽을 각오로 무장하고 나선 창립요원들에게서 어릴 적부터 동경해오던 화랑의 기상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이 당겨진 열정의종착점은 아직 불분명했는데요. 그러다 연봉학 기성(技聖)의 초빙 강연에서 목표를 정했습니다.
		</p>
</p>
<p>
			“당시 연봉학 기성에게선 제 짧은 표현력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요샛말로는 아우라(aura)랄까요? 아무튼 형언하기 힘든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어요. 시성이나 악성은 들어봤지만 기성이라니 불현듯 가슴이 뛰더군요. 그때 이 길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온갖 역경을 딛고 100톤 전로 국산화를 달성한 기성의 선명한 발자국을 좇아서 저도 한번 철강 장인(匠人)이 돼보기로 맘을 먹었지요.”
		</p>
</p>
<p>
			그리고 1987년 4월, 포항제철소2제강전로에서 철강명인의 꿈이 막 피어올랐습니다.
		</p>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144A63D560BA0E8159681.jpg" style="cursor: pointer;max-width:100%;height:auto" onclick="open_img('http://cfile2.uf.tistory.com/original/2144A63D560BA0E8159681')" width="650" height="260" filename="이미지 2.png" filemime="image/png"/></span>
		</p>
</p>
<p>
			&#8220;제강일이 호랑이 등일 거라는 건 미리 예상했었습니다. 근데 정작 문제는 사람이었어요. 활달한 성격과 학창시절부터 어느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지내던 사교성으로 사람 사귀는 일은 자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급, 내규 등 여러 준거 기준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건 사뭇 다른 문제였어요. 입사하고 초반 몇 년 동안은 조직에 용해되지 못하고 제 자신에게로만 침잠됐던 시절이었습니다.
		</p>
</p>
<p>
			그렇다고 허송세월만 보낸 건 아니었습니다.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했고, IT자격증도 취득했지만 가슴 한구석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었어요.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이 여럿 있겠지만 그 이면 가장 깊숙이 자리한 건 인정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그림이 어찌 됐건 그 기저에 밑바탕은 그대로였습니다. 내로라하는 쇠장이. 뚜렷한 목표를 두고도 우왕좌왕하던 저를 묵묵히 참아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에요.&#8221;
		</p>
</p>
<p>
			흔들리던 김 명장을 잡아준 것은 본가에서 맞닥뜨린 사자성어였습니다. ‘우수천석(雨垂穿石)’. 한학자이던 아버지 친구분께서 아버지에게 선물한 글씨였는데요. 힘 있는 필치가 희미해진 지난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p>
</p>
<p>
			&#8220;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찮은 빗방울이라도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단단한 돌도 뚫을 수 있다는 건데, 결국 어떤 일이건 꾸준히 매진하면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불쑥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제게 훌륭한 나침반이 돼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집으로 가져와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살피고는 방향을 체크해요. 거, 액셀 밟기 전에 앞 한번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웃음)&#8221;
		</p>
</p>
<p>
			<span style="COLOR: #4174d9"><strong>90년대 초 전 세계 스테인리스시장 얼어붙어</strong></span><br />
			<span style="COLOR: #4174d9"><strong>합금철 실수율을 높여 위기 극복해</strong></span>
		</p>
</p>
<p>
			&#8220;90년대 초, 우리나라는 연간 25만 톤에 달하는 스테인리스 핫코일을 수입하고 있었어요. 회사는 1986년 스테인리스사업부를 발족하고 1990년 7월 제강서 냉연에 이르는 스테인리스 일관생산체제를 구축, 수급 불균형 타파에 나섰습니다. 물론 같은 해 12월 광양 3기 종합준공으로 조강연산 1,750만 톤을 달성한 것에 비하면 갓 걸음마를 뗀 단계였죠. 하지만 스테인리스는 뛰어난 내식성, 미려한 외관과 더불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장차 회사의 미래를 짊어질 기린아(麒麟兒)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만큼 손도 많이 필요했고요.
		</p>
</p>
<p>
			스테인리스강 정련에는 니켈, 크롬 등 고가의 합금철이 다량 투입됩니다. 녹이 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녀석들 덕이에요. 근데 그 대가도 확실합니다. 제조원가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자그마치 80% 정도니까요. 갑자기 90년대 초 니켈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 세계 스테인리스강 시장이 얼어붙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 당시 제게 주어진 취련 작업은 용강의 특성을 감안해 이 값비싼 성분들을 조정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첨가된 합금철의 실수율을 높이는 게 저의 지상목표였죠. 제 손끝에서 당시 제 월급 정도가 왔다 갔다 했다니까요.
		</p>
</p>
<p>
			기필코 원가절감을 이뤄내겠다는 일념으로 매달렸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던 명예회장님 말씀대로 한번 미쳐보니 슬슬 길이 보이더군요.”
		</p>
</p>
<p>
			스테인리스강 취련사 김공영은 쓰러진 과녁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오랜만에 손에 쥔 화살은 그 어느 때보다 촉이 바짝 서있었습니다. 팽팽한 활시위에서 당겨진 화살은 쏘는 족족 과녁을 꿰뚫었는데요. 김 명장의 이름이 매번 실수율 수위에 오르면서 ‘취련은 김공영’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목표에 도달한 건 아니었죠. 길을 냈으니 이젠 닦을 차례였습니다.
		</p>
</p>
<p>
			<span style="COLOR: #4174d9"><strong>크롬산화물 효과적 환원기술 개발, 스테인리스 자동 취련 모델 BAM 제작 </strong></span><br />
			<span style="COLOR: #4174d9"><strong>조업자 사이의 지식공유를 통한 역량 결집 꿈꿔</strong></span>
		</p>
</p>
<p>
			&#8220;제가 좀 개방적인 편입니다. 특히 회사일에 있어서는 더 그래요. 초일류 조직이 되려면 구성원들이 검증과 체계화 노력을 통해서 자신이 체득한 노하우를 자산화해야 합니다. 조금 세련되게 표현해보자면 ‘오픈 앤드 콜래보레이션(open and collaboration, 개방과 협력)’이랄까요. 특히 변수가 많은 정련 작업은 조업자 사이의 지식공유를 통한 역량 결집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저도 동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8221;
		</p>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5311F3F560BA16A120BD7.jpg" style="cursor: pointer;max-width:100%;height:auto" onclick="open_img('http://cfile1.uf.tistory.com/original/25311F3F560BA16A120BD7')" width="650" height="173" filename="이미지 4.png" filemime="image/png"/></span>
		</p>
</p>
<p>
			<span style="COLOR: #4174d9"><strong>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팀워크</strong></span><br />
			<span style="COLOR: #4174d9"><strong>앞으로 제2, 제3의 명장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strong></span>
		</p>
<p>
			<br />&#8220;지금 저희 파트가 서른 명 가량 됩니다. 근데 어느 분이 마치 한 명 같이 보인다고 그러더군요. 파트장을 맡으면서 공언한 게 하나 있습니다. 출근할 때 행복하고, 퇴근할 때 보람을 느끼는 파트를 만들겠노라고. 고맙게도 너 나 할 것 없이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더군요. 그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았으니 하나로 보일 수밖에요.&#8221;
		</p>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6264842560BA58411C443.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410" filename="2_메인썸네일_650x430222.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김 명장은 당면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안으로 팀워크를 강조했습니다. 핸드폰을 꺼낸 김 명장은 어제 회식 후에 촬영한 거라며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는데요. 여태껏 보아왔던 여느 단체 사진과는 달리 좀처럼 서열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친소관계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죠. 틀림없이 그들은 모두 파트너 관계였습니다.
		</p>
</p>
<p>
			&#8220;포스코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많은 덕을 봤습니다. 이젠 제가 입은 그 후광에 보답할 차례에요. 묵묵히 후배들이 가는 길을 비춰줄 요량입니다. 누가 묻더군요. 이젠 목표를 다 이룬 거 아니냐고… 맞습니다. 30여 년 전, 당돌하던 고등학생 시절에 수립했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어요. 하지만 대한민국 명장 김공영으로서의 목표는 최근에 막 세웠습니다. 저희 파트에서 제2, 제3의 명장을 배출하는 것. 이제 그걸 향해 뛰어볼 참입니다.&#8221;
		</p>
</p>
<p>
			마침표는 어느새 또 한 번 물음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p>
</p>
<p style="TEXT-ALIGN: center">
<p style="TEXT-ALIGN: center">
<p>		<!-- Google Analytics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id=tx_entry_90489_ class=txc-imag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65DD1345603AE6E0F1052.jpg" width=650 height=50>
		</p>
<p class="o_remarks">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 선보이는 &#8216;대한민국 명장 인터뷰&#8217; 시리즈! 명장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는 더 진하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p>
</p></div>
<p>	</span>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대한민국 명장 인터뷰] #1. 매순간 &#8216;최선의 느낌표&#8217;를 찍다, 박진현 명장</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b%8c%80%ed%95%9c%eb%af%bc%ea%b5%ad-%eb%aa%85%ec%9e%a5-%ec%9d%b8%ed%84%b0%eb%b7%b0-1-%eb%a7%a4%ec%88%9c%ea%b0%84-%ec%b5%9c%ec%84%a0%ec%9d%98-%eb%8a%90%eb%82%8c%ed%91%9c%eb%a5%bc-%ec%b0%8d/</link>
				<pubDate>Mon, 21 Sep 2015 07:00: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사람과문화]]></category>
		<category><![CDATA[대한민국 명장]]></category>
		<category><![CDATA[포스코]]></category>
		<category><![CDATA[포스코 그룹]]></category>
		<category><![CDATA[포항제철]]></category>
									<description><![CDATA[대입시험을 며칠 앞둔 수업시간. 친구들과 시시한 장난을 주고받으며 게으른 시곗바늘을 채근하고 있던 찰나, 선생님께서는 그날따라 수런거리는 소리가 많이 거슬리셨던지 불현듯 칠판 한가운데 분필을 내던지시곤 나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8220;이게 뭐냐?&#8221; 그야말로 이게]]></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span id="fontsize"></p>
<div class="tt_article_useless_p_margin">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727C94855FBD7E81692B3.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31" filename="포스코_박진현명장_00-1.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대입시험을 며칠 앞둔 수업시간. 친구들과 시시한 장난을 주고받으며 게으른 시곗바늘을 채근하고 있던 찰나, 선생님께서는 그날따라 수런거리는 소리가 많이 거슬리셨던지 불현듯 칠판 한가운데 분필을 내던지시곤 나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p>
</p>
<p>
			&#8220;이게 뭐냐?&#8221; 그야말로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8220;&#8230;점입니다.&#8221; 선생님께선 말없이 그 점에서 평행한 위치에 점 하나를,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다른 점 하나를 찍으셨습니다. &#8220;여기 와서 한번 이어봐라.&#8221; 뭔가 된통 걸렸구나, 싶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선 두 개를 그었습니다. &#8220;그 두 개의 거리를 빨간 분필로 그어 봐.&#8221; 제발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빨간 선을 그었습니다.
		</p>
</p>
<p>
			선생님께선 어느새 내 옆으로 오셔서는 아까 그 두 점에서 계속 선을 이어 나가셨습니다. 칠판 끝자락에 다다른 그 두 선 간의 거리는 얼핏 봐도 내가 그은 빨간 선의 십수 배는 돼 보였습니다. &#8220;봐라. 비록 같은 점에서 시작했어도 둘의 차이는 가면 갈수록 벌어지게 마련이다. 자, 너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점을 찍을 테냐?&#8221; 교실 안은 어느새 쥐 죽은 듯 숙연해졌습니다.
		</p>
</p>
<p>
			점(點). 모든 건 이 점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끝맺음 또한 점의 소관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도 이 알파와 오메가를 한데 아우르는 존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에 시간을 선으로 표현한다면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바로 점에 대응될 것입니다.
		</p>
</p>
<p>
			&#8216;대한민국 명장&#8217;. 산업현장 종사자 가운데 최고의 숙련 기술자에게 수여하는 상. 기술인들 중 &#8216;최정점&#8217;에게 주어지는 칭호. 지난 9월 1일, 포스코에 박진현과 김공영이라는 두 개의 점이 더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명장은 포스코인으로서 어떤 이정표를 찍어왔을까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 자랑스러운 포스코인을 차례로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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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o_title">명장과의 첫 만남 사람 냄새를 느끼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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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txc-textbox style="BORDER-TOP: #79a5e4 1px dashed; BORDER-RIGHT: #79a5e4 1px dashed; BORDER-BOTTOM: #79a5e4 1px dashed;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PADDING-LEFT: 10px; BORDER-LEFT: #79a5e4 1px dashed; PADDING-RIGHT: 10px; BACKGROUND-COLOR: #dbe8fb">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184px;MARGIN-RIGHT: 1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750D34055FB943D369110.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184" height="231" filename="포스코_박진현명장_01.jpg" filemime="image/jpeg"></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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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4174d9">박진현(포스코 HR실 기술교육그룹)</span><br /></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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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포스코에 입사. <br />
				군 복무 당시 항공기 정비 분야 경력을 인정받아 제강공정 설비 기계정비 전담 부서에 배치된 후 지금까지 기계정비 분야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br />
				사내에서는 유압 제어기술 교육을, 사외에서는 중소기업 기술력 향상을 위한 우수 숙련기술 전수에 매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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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낌표(!) 박진현 명장의 첫인상은 바로 느낌표였습니다. 자칫 성가실 수 있는 방문에도 환한 웃음과 함께 반가이 손을 잡아주는 모습부터 평생 천착해 온 유압 제어밸브를 인체에 빗대어 설명해 주는 모습까지&#8230;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에서 만난 박진현 명장은 수십 년 넘게 차가운 금속 기계를 다룬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한 느낌을 선사하는 천생 휴머니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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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o_title">꿈을 위한 마침표 포스코에게 기계 전문가로의 첫걸음을 내딛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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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현 명장은 1985년 첫 직장이었던 대우전자에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포항제철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당시 대우전자는 구직자들 사이에서 단연 선망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박 명장은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기계분야 전문 기능인이 되고자 포항제철 제강공정 설비 기계정비원이라는 시작점에 또 한 번 올라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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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마주한 철강 산업은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가동되는 장치산업의 최고점이었습니다. 박 명장에게는 이 점이 두려움과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 빠르게 물들어 갔고, 쉼표 없이 매진한 결과는 뚜렷한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의 느낌표가 그의 인생에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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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o_title">좌절의 그늘에서 쏘아올린 희망의 빛</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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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정비반장으로 근무 중이던 어느 날. 래들(용강을 담아 운반하는 용기)의 상승과 하강을 담당하는 장치인 &#8216;래들 터릿(Ladle Turret)&#8217;의 유압장치에 이상이 생겨 공정이 중단됐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부랴부랴 긴급 출동해서 밤을 새워가며 매달렸지만 다음날 아침까지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죠. 결국 유압 제어시스템 이상이었다는 걸 알아냈지만 이미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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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충격과 자괴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박 명장은 유압시스템 전문가로서의 변환점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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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220B14F55FBD93D10920A.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280" filename="포스코_박진현명장_02-f.jpg" filemime="image/jpeg"/></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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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8216;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은 큰일에도 충성된다&#8217;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 &#8216;신은 세세한 곳에 머문다&#8217; 라는 격언도 있고요. 저도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지니고 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그나마 조금 재능이 있는 걸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매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사람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장점과 나름의 방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섣불리 자기 관점에서 상대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건 지양해야 해요. 색안경을 벗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올바른 관계의 첫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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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4174d9">교단에서 유압 제어 분야 강의,</span><br /><span style="COLOR: #4174d9">후배들이 장점을 발현하도록 돕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라 생각</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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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이라는 게 상대적 개념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결과 위주로만 모든 걸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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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때때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하기도 하고, 사람의 힘으로는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난관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선한 결과란 건 없어요. 상황과 시간에 따라서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배부른 사람에겐 무용지물이고,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 마련입니다. 최선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아는 겁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 자부할 수 있고 그 과정에 부끄럼이 없다면 결과가 어찌 됐건 그 본연의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 않아요. 혹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좌절한 분께서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네요. &#8216;진인사대천명&#8217;. 기다림의 미학도 필요합니다.(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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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제 분야에서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시련도 많았고, 정말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특히 제가 한창 일하던 당시는 지금에 비해 여러모로 척박했습니다. 당시 돌밭에서 구르고 넘어지면서 체득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그들은 물론이고 포스코, 더 나아가 국가에까지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될까요. 아마도 상흔이 훈장으로 탈바꿈하는 영광된 순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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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52BA84855FBD7E9120CA8.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174" filename="포스코_박진현명장_03-1.jpg" filemime="image/jpeg"/></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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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걱정과 불만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대 차이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인정의 대상이죠. 절대 상대를 이기려 들거나 내 맘대로 바꾸려 들면 안 됩니다. 제 경우만 봐도 그래요. 차이를 인정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리더군요.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젊은 친구들이 탐탁지 않을 때도 있어요. &#8216;도대체 왜 저걸 못하지&#8217;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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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이 실수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너그러이 수용하고 후배들이 자신들의 장점을 발현하고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게끔 도와주고 건사하는 게 우리 선배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도 선배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배울 점은 빨리 습득하는 게 좋겠죠? 반면교사도 교사는 교사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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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4174d9">배관, 용점, 전기기능장 등 14개 자격증 취득</span><br /><span style="COLOR: #4174d9">여가엔 가벼운 풋살 즐겨&#8230;</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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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453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25A7F3355FB9BF23A0BC3.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453" height="296" filename="포스코_박진현명장_04.jpg" filemime="image/jpeg"/></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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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압 제어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전기에 관련된 전문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2002년도부터 2008년까지 전기 분야 및 메커트로닉스 분야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경주했죠. 특히 전기공사기사와 전기기능장의 경우는 3년 동안 6전 7기 끝에 취득한 자격증이기에 각별히 더 애정이 갑니다. 이렇듯 특별한 노하우가 있기보다는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관심 가는 분야 또는 직무관련도가 높은 자격증을 알아보고 꾸준히 매진하면 누구든 충분히 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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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격증 공부는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신장할 수 있고 주는 성취감도 남달라서 후배들에게도 많이 권하고 있어요. 자칫 타성에 젖기 쉬운 때엔 좋은 각성제 역할도 하고요. 혹시 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격증과 관련해서 궁금증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 연락 주세요.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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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로 풋살을 즐겨 했습니다만 요즘은 잘 못하고 있네요. 톡톡 공을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가는 재미가 쏠쏠한데 말이죠&#8230; 물론 자기관리 차원에서 틈틈이 가벼운 운동을 하긴 합니다. 아무래도 이젠 재미보다는 건강 유지에 방점을 두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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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4174d9">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시대, </span><br /><span style="COLOR: #4174d9">소중한 사람들도 돌아보며 베풀 수 있는 여유 가지길</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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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가시적인 것만 좇다 보면 자칫 소중한 걸 간과하기 마련이에요. 적어도 전 포스코에 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애국심이건 선공후사의 정신이건 간에 잊지 말고 수시로 들여다보았으면 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큰 장점이지만,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우직한 게 더 널리 인정받고 보다 찬란한 가치를 발할 수도 있다는 생가이에요. &#8216;토끼와 거북이&#8217; 우화는 제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줍니다. 여러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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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16;현재에 충실하자&#8217;가 제 모토라 그럴듯한 이정표는 아직 세우지 못했는데&#8230; &#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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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제가치국평천하&#8217;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돌이켜 보면 모든 출발점은 &#8216;나&#8217;였습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다 여유가 생기니 가족도 돌보고 한 거지요. 주변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8230;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없고, 포스코가 없었다면 오늘의 박진현도 없었을 겁니다. 이제 외연을 더 넓혀서 회사와 나라에 좀 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아직 턱없이 부족하니 많이들 도와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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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5/09/265DD1345603AE6E0F1052.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50" filename="포스코_사내블로그_배너.jpg" filemime="image/jpeg"/></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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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o_remarks">
			현재에 충실하면서도, 그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업무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해 온 박진현 명장. 그런 그에게 &#8216;명장&#8217;이라는 칭호가 주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온 포스코 내 &#8216;대한민국 명장&#8217;들과의 만남,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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