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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군자화 &#8211; 포스코뉴스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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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8편.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변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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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May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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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포스코에세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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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35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86E39573ECAFF328266.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포스터" width="635" height="36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 &#8216;현대적으로 변용된 사군자&#8217;에 대해 들려드릴까 합니다.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근대 이후 사군자화의 변화</h2>
<p style="text-align: justify;">오랜동안 군자의 식물로 애호되었고, 또 생활 속에 스며들어 각종 문양의 소재로도 쓰였던 사군자는 그 개념은 있었지만 용어가 보편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입니다. 사군자라는 용어가 매·란·국·죽을 가리키며 직접적으로 사용된 예는 1922년부터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 규정’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 전람회의 사군자 규정에 “주로 먹을 사용한 간단한 그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금껏 ‘매죽’ 혹은 ‘난죽’이라 부르던 것이 최초로 ‘사군자’라는 용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죠.</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그 배경에는 아픈 역사가 함께 합니다.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부는 조선 사람이 홀로 무대를 휩쓸었고,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시대 상황에서 사군자화는 절개와 인고의 상징성으로 인해 크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회가 거듭되자 총독부는 동양화부에 속해있던 사군자를 ‘서부(書部)’로 넣었다가 점차로 입선작을 줄여 아예 없애버린 것입니다. 사군자가 민족사상을 이어간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이후 조선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1939년에 열린 조선서도전람회와 1940년에 열린 문인서화전람회에 서예와 함께 전시됨으로써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35A139573ECAFE1717FF.jpg" alt="윤용구, 사군자 10폭 병풍 종이의 수묵, 각 127*34cm 개인소장" width="628" height="33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근대기에는 사군자 중에서도 ‘난죽’(蘭竹)이 사군자를 대표하는 식물이 되었고, 남아 있는 작품 또한 난죽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간단하다고해서 쉬운 것은 아니나 사군자를 배우는 과정에서의 편의성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를 계절에 맞추어 봄-매화, 여름-난, 가을-국화, 겨울-대나무로 보는 것도 중국 사람들이 겨울 매화, 봄 대나무, 여름 난, 가을 국화라 했던 것과 다른 우리만의 특징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에 대한 애호 분위기로 당시 각 신문의 신년 휘호에 사군자화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형미와 함께 상징성이 큰 사군자화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다짐을 함께 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을 것입니다. 역으로 신년 휘호의 사군자화가 사군자를 대중과 더욱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1900년대 초반 사군자화는 이처럼 급격히 대중화되었고, 사군자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p>
<h2 class="o_title">전통의 새로운 해석</h2>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가 대중화되면서 사군자화의 정신성은 점차 약화되었고,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모 사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한동안 답습되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구성 때문에 필법을 익히기 위한 그림의 입문과정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없지 않았죠.</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한 가운데 몇몇 동양화가들 사이에서 당시 우리 그림이 항상 외세에 흔들리면서 불안정 상태를 계속해 왔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일었는데요. 전통적인 화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이는 화가들이 있어 사군자화는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96539573ECAFE315439.jpg" alt="김지하, &lt;난초&gt; 종이에 수묵, 30.5*17.8cm , 개인소장" width="242" height="42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의 묵란을 보면 춤을 추는 듯, 흐느적거리는 듯, 바람결에 휘날리는 긴 난 잎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그는 표연히 바람에 휘날리는 난이라는 뜻으로 ‘표연란(飄然蘭)’이라 하고 흉중의 한(恨)을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평론가 유홍준 교수는 김지하의 긴 한 잎은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역사적 체험이자 삶의 농축된 소망의 원형질로서의 한을 담아낼, 난 그림에서 지향할 형식의 틀이라고 해석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29C839573ECAFF242BD5.jpg" alt="장일순,&lt;묵란&gt; 종이에 수묵 30.5*48.5cm, 개인 소장" width="322" height="25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 묵란과 같은 듯 다른 느낌을 무위당(無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의 &lt;묵란&gt;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김지하 난의 정갈하면서도 부드러운 먹의 느낌은 장일순으로 부터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전통적인 난법을 변형하여 일부러 난을 그리려 하지 않은 듯 몇 번의 붓놀림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내었죠. 그의 호인 무위당(無爲堂)은 그의 삶의 철학만이 아니라 그림에도 적용되는 듯합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97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477539573ECAFF07161C.jpg" alt="박영기, &lt;묵죽&gt; 종이에 수묵, 개인 소장" width="197" height="70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와 장일순 묵란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주에서 활동한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 1874~1949)과 그 손자인 화강(化江) 박영기(朴永麒, 1922~?)에 이릅니다. 박영기의 사군자 또한 전반적으로 깔끔한 묵법을 특징으로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그의 &lt;묵죽&gt;에서 군더더기 없는 먹과 필선으로 그은 부러진 대나무 한 그루는 정갈하고 매끄러운 먹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묵죽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거칠거나 억세지 않아도 충분히 강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은데요. 같은 표현은 박영기의 조부인 차강 박기정의 묵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채색인물화로 유명한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은 중년 이후 그림 전반을 수묵의 문인화풍으로 전환하면서 사군자화를 그 본령을 삼아 즐겨 그렸습니다. 우리 전통화풍과 함께 여러 대가들을 깊이 탐구하여 터득한 현대적인 구도와 적극적인 색채감 등을 자기화 함으로써 전통적 소재를 현대화 할 수 있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3FDF39573ECB000EB55F.jpg" alt="장우성,&lt;국화&gt; 1998년 종이에 수묵담채 34*43.5cm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 width="32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1990년대 이후 그는 만년에 까지 여러 점의 국화도를 그렸는데, 만개한 국화 몇 송이와 간략한 화제를 적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소재에 집중하면서도 여백을 충분히 남겨 여유로운 화면을 연출했습니다. 87세의 노화가가 쓴 “봄에 먹은 마음 그대로 서릿 가을을 견딘다.”는 화제는 단지 국화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화가 송수남(1938~2013)의 &lt;매화&gt; 또한 홍매의 전통을 이어 부채에 그린 것입니다. 만개한 홍매의 화려함은 19세기 이후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서 익히 보아 왔지만, 줄기와 꽃에 가한 변화 없는 필선의 단조로움이 도리어 현대적인 느낌을 주죠.</p>
<h2 class="o_title">현대적 변용</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3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94E35573ECC770ABA6B.jpg" alt="김환기, &lt;매화와 항아리&gt; 1957년, 캔버스에 유채, 55*35cm, 환기미술관 소장 " width="243" height="33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수묵으로 간단하게 그린 그림’이라 했던 사군자화는 유화의 소재로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수묵(水墨)과 모필(毛筆)에서 유채로 재료가 바뀌면서 사군자는 그에 맞는 새로운 형태감을 찾아는데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모더니즘의 틀 안에 조선 미술의 미의식을 결합시켜내는 것을 자신의 예술과제로 삼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서양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생각하였다. 그 중 하나가 &lt;매화와 항아리&gt;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김환기에 있어서 이들은 ‘구체화 된 전통’이었다. 그는 이들의 독특한 특징을 단순화하여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금씩 변형시키거나 과장하여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매화, 달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09335573ECC78033B1F.jpg" alt="유양옥&lt;선면매조&gt; 종이에 채색, 34.5*34.5cm, 개인 소장" width="249" height="38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유양옥(柳良玉, 1944~2012)의 &lt;선면매조&gt;에서 청록색의 바탕에 날아가는 새나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김환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아 꺾이고 옹이진 줄기에 간략하게 그린 흰 매화의 깔끔한 조화는 전통적 상징성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조선시대 매화를 좋아한 사람들은 비단이나 밀랍(蜜蠟) 즉 벌집에서 얻은 납으로 매화를 만들어 쉬이 지는 꽃의 아쉬움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벌이 꽃에서 채취하는 꿀의 부산물인 밀랍으로 꽃을 만드니 꽃이 돌고 돌아 다시 꽃이 된다는 뜻으로 윤회매(輪回梅)라 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은 것일까요? 사군자를 철 조각으로 표현한 조환의 작품들이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사군자 영상작업은 전통의 재창조라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43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7D4135573ECC78244370.jpg" alt="조환 &lt;무제&gt; 2015년 철과 폴리우레탄 290*578*15cm" width="43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는 단순한 구성과 서예의 기법을 활용한 문인취향의 특성으로 인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구성 때문에 문인화의 입문 과정쯤으로 생각하기도 하나, 소재의 상징성이나 사군자화의 역사성 뿐 아니라 수묵의 흑백이 주는 현대적 조형성 등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적지 않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얼마 남지 않은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 전시가<br />
종료되기 전 포스코미술관에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p>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7편. 생활 속의 사군자화</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7%ed%8e%b8-%ec%83%9d%ed%99%9c-%ec%86%8d%ec%9d%98-%ec%82%ac%ea%b5%b0%ec%9e%90%ed%99%94/</link>
				<pubDate>Fri, 20 May 2016 07:00: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포스코에세이]]></category>
		<category><![CDATA[사군자]]></category>
		<category><![CDATA[사군자 공예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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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포스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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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각 식물마다 타고난 특성이 군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사군자.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1A8F4B573D6E27329887.jpg" alt="&lt;사군자, 다시피우다&gt;전 포스터" width="650" height="343"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각 식물마다 타고난 특성이 군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사군자.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8216;생활 속의 사군자화&#8217;라는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왔는데요.</p>
<p style="text-align: justify;">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사랑을 받았던 사군자는 문학이나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민화, 공예품 등 일반인들의 생활공간 깊숙이 파고들어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다채로운 형태로 활용되었습니다. 공예품이나 민화에서는 오랜 사군자화의 전통을 따른 것도 있지만, 문인들이 지향하는 바와 다른 대중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재미있게 변형되거나 새롭게 해석되기도 했답니다.</p>
<h2 class="o_title">공예품의 사군자 문양</h2>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32DA3E573D6600106F00.jpg" alt="&lt;나전칠기매란무늬함&gt; 19세기, 65*38*19cm, 개인 소장" width="285" height="22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는 그 이미지가 갖는 품격과 도안화하기에 적합한 간결한 형태로 인해 각종 도자기나 생활용품에 즐겨 애용되었습니다. 나전칠기나 철제 그릇의 문양, 시전지판, 필통 등 목공예의 문양, 벼루나 화로 등 석공예에도 사군자는 애용되는 문양이었는데요. 네 가지 식물로 이루어진 사군자는 사각형의 네 면을 장식하기에 적합해 사각형의 필통이나 장식장의 각 면 등에 두루 사용되곤 했죠.</p>
<p style="text-align: justify;">도자기에 사용된 사군자화는 무명 도공들이 그렸을 단순한 그림도 있지만, 전문 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수준급 작품도 있어 그 표현 양식도 다양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65203D573D6B9D23A0BA.jpg" alt="&lt;백자철화매죽문시명호&gt; 17세기, 높이 35.3cm, 지름 30.5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lt;백자청화사군자무늬각병&gt; 18세기, 높이 16.5cm, 개인 소장 " width="450" height="40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17세기 작품으로 전해오는 &lt;백자철화매죽문시명호&gt;에 있는 매화는 산화철 안료로 매화 한 그루를 그린 것입니다. 이 도자기에 그려진 끝이 부러진 줄기에 새 가지가 곧게 난 매화도는 조선 중기에 유행한 매화도가 단순화된 모습입니다. 이 철화백자의 매화도는 반대편에 쓰인 시와 어울려 화폭을 보는 듯 단순화된 멋을 풍기죠.</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076D47573D70F410EA86.jpg" alt="&lt;청화백자난초문필통&gt; 19세기, 높이 16.0cm, 구경13.1cm, 저경 12.0cm, 리움박물관 소장 &lt;청자상감국화문탁잔&gt; 12세기 후반, 총 높이 12.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dth="450" height="35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난 그림이 조선 후기부터 많아지는 것처럼, 도자기에 활용된 난 또한 18세기에 들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사군자의 하나로 그려지지만 단독으로 시문된 경우도 있습니다. 선비들이 즐겨 쓰는 필통, 연적 등 문방구에도 난 문양은 좋은 소재였습니다. 리움박물관 소장 &lt;청화백자난초문필통&gt;의 난은 하단에 지면을 상징하는 선 위에 굵고 가는 필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꽃 또한 농담을 살려 경쾌하게 그려 더욱 회화적인 느낌이 듭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국화가 도자기 문양으로 그려진 예는 고려 시대부터 볼 수 있습니다. 상감청자에 시문 된 국화문은 청초한 들국화 모양입니다. 가는 선으로 파내 흑토와 자토를 메워 넣는 상감청자의 기법 상, 가는 선으로 표현이 가능한 들국화 문양은 매우 선호되는 문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73753D573D6B9D195A07.jpg" alt="&lt;백자철화국화문호&gt;17세기, 높이 13.8cm 호림박물관 소장 &lt;백자진사죽문호&gt; 18~19세기, 높이 20.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dth="450" height="35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국화꽃을 자세히 그려 넣는 경우도 있는데, 철화로 추상화된 국화를 그린 항아리는 투박한 선 맛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답니다. &lt;백자철화국화문호&gt;는 철화 안료로 간략하게 국화 네 송이를 그린 것인데요. 밑 부분이 좁아든 투박한 기형에 군데군데 태토가 드러난 소박한 형태의 항아리에 그려진 국화는 시대를 뛰어넘는 독특한 미감을 보여줍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진사 안료로 그린 &lt;백자진사죽문호&gt;의 대는 청화 안료로 그린 대나무의 섬세함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몰골법의 한 붓으로 줄기와 잎을 연이어 그린 듯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진하고 연한 농담의 차이가 자연스럽습니다. 붉은색을 띤 진사로 그려져 있어 송나라 때 소동파가 붉은 먹으로 자죽(紫竹)을 그렸다고 한 고사를 연상케 합니다. 소동파가 붉은 먹으로 대나무를 그리자 이를 본 지인이 “이 세상에 붉은 대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소동파가 “그럼 검은 대는 또 어디에 있느냐”라며 태연해했다는 것이죠. 그 후로 붉은 안료로 그린 자죽이 유행처럼 그려졌다고 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29C338573D672A07519E.jpg" alt="&lt;은제비녀&gt;19세기말~20세기초 , 길이 13.7cm/25.5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 width="306" height="277" style="c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정절의 상징인 대나무나 매화는 규방 여인들의 자수 문양이나, 머리장식의 문양으로도 즐겨 사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축수(祝壽)나 벽사(僻邪)의 의미를 더하여 생활 곳곳에서 문양으로 쓰였습니다.</p>
<h2 class="o_title">민화로 다시 태어난 사군자</h2>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는 특히 구도나 문양을 단순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각종 민화의 장식에도 활용되었습니다. 민화의 사군자는 장식적 효과나 의미 변형이 주는 즐거움이 적지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700B38573D672A300BF1.jpg" alt="&lt;문자도 치&gt; 팔폭병풍 중 종이에 채색, 50.8*29.2cm, 미국LA카운티미술관 소장 " width="297" height="50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민화의 매화는 일반 묵매화 전통을 따르면서도 길상의 의미를 더하여 형태가 과장되거나 특이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효(孝)·제(悌)·충(忠)·신(信)·예(禮)·의(義)·염(廉)·치(恥)라는 유교의 핵심 덕목을 강조한 &lt;문자도(文字圖)&gt;에서 매화는 장식적인 기능과 상징성을 나타내는 두 가지 기능을 다 갖추고 그려져 있습니다. ‘치(恥)’자의 검은색 글씨에 핀 연분홍의 꽃은 간결하면서도 장식적인 효과가 뛰어난데요. 또 ‘의롭고 염치를 아는 사람,즉 유교에서 말하는 완성된 인격자로서의 군자’라는 상징에 매화의 곧은 이미지는 그 의미를 더해줍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9B238573D6728072263.jpg" alt="필자미상, &lt;장생도&gt;19세기 가회박물관 소장" width="263" height="52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런가 하면, 민화 &lt;백동자도(百童子圖)&gt;에서 매화는 다산(多産)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매화나무에 다래다래 열리는 매실은 그 수가 많은 것으로서 다산을 상징합니다. 일찍이 중국에서 매실을 던져 사랑을 구하던 습속에서도 사랑의 매개체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난은 독립된 소재로서 보다는 책가도나 장생도 중 자연의 일부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lt;책거리(冊─)&gt;에 그려진 난은 관상 가치가있는 여러 물건들을 배치해 사랑방의 품격을 높이는 그림의 한 켠에서 그 방주인의 인품을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담당하고 있는 듯합니다. 드물게 난이나 사슴, 바위, 불로초, 물과 같은 십장생류와 함께 장생 사상을 담아 그려지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058738573D6728221337.jpg" alt="필자미상&lt;화조도10곡병&gt; 중 &lt;국화&gt;,종이에 채색 55*37cm, 리움박물관 소장" width="300" height="55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그에 반해 국화는 군자의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책가도(冊架圖), 초충도(草蟲圖), 소과도(蔬果圖) 등 문인 취향의 민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소재였습니다. 《화조도10곡병풍》 중의 &lt;국화(菊花)&gt;는 괴석, 나비, 화려한 깃털의 꿩 등과 함께 그려져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죠.</p>
<p style="text-align: justify;">국화꽃도 여러 색이 어울려 있고, 형태는 크고 활짝 피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국화는 늦가을에 핀 고고한 상징보다는 아름다운 색의 꽃으로 부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함께 그려진 나비도 화려한 제비나비 한 쌍이며, 꿩도 암수 모두 화려한 색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꽃처럼 장식을 한 이끼 낀 바위도 넣음으로써 부부화합의 의미를 더하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민화에 그려진 대나무는 일반적인 군자 이미지보다는 부귀 장수와 같은 길상적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는 전설에 따라 대나무와 봉황이 함께 그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봉황이 깃드는 곳이 오동나무이다 보니 오동나무와 봉황, 대나무와 봉황 혹은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함께 등장하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0BA338573D67281E1CCE.jpg" alt="필자미상(해산) &lt;봉황도&gt; 종이에 채색 102*37cm, 개인소장" width="262" height="666"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민화 &lt;봉황도(鳳凰圖)&gt;는 그러한 내용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매우 평면적이면서도 봉황 깃이나 대나무의 죽간, 솔방울 등은 마치 공예품처럼 도안화되었는데요. 이 그림에는 ‘해산(海山)’이라는 민화에는 흔치 않은 그린 사람의 호와 싯구가 함께 적혀 있어 흥미롭죠. 더구나 대나무 한 줄기는 위가 잘려져 있어서 절의를 상징하는 부러진 대나무의 전통이 반영되어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처럼 민화 속에 사군자가 스며든 것은 한편으로는 사군자 문화가 그만큼 대중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그 의미 변용이 있기는 하였으나 민중들도 사군자의 정신적 가치를 공유할 만큼 민중의식이 상승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가 전해드리는 사군자 이야기,<br />
다음 시간에 전해드릴 마지막 편을 기대해주세요!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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