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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군자 그림 &#8211; 포스코뉴스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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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8편.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변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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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May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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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35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86E39573ECAFF328266.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포스터" width="635" height="36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 &#8216;현대적으로 변용된 사군자&#8217;에 대해 들려드릴까 합니다.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근대 이후 사군자화의 변화</h2>
<p style="text-align: justify;">오랜동안 군자의 식물로 애호되었고, 또 생활 속에 스며들어 각종 문양의 소재로도 쓰였던 사군자는 그 개념은 있었지만 용어가 보편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입니다. 사군자라는 용어가 매·란·국·죽을 가리키며 직접적으로 사용된 예는 1922년부터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 규정’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 전람회의 사군자 규정에 “주로 먹을 사용한 간단한 그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금껏 ‘매죽’ 혹은 ‘난죽’이라 부르던 것이 최초로 ‘사군자’라는 용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죠.</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그 배경에는 아픈 역사가 함께 합니다.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부는 조선 사람이 홀로 무대를 휩쓸었고,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시대 상황에서 사군자화는 절개와 인고의 상징성으로 인해 크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회가 거듭되자 총독부는 동양화부에 속해있던 사군자를 ‘서부(書部)’로 넣었다가 점차로 입선작을 줄여 아예 없애버린 것입니다. 사군자가 민족사상을 이어간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이후 조선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1939년에 열린 조선서도전람회와 1940년에 열린 문인서화전람회에 서예와 함께 전시됨으로써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35A139573ECAFE1717FF.jpg" alt="윤용구, 사군자 10폭 병풍 종이의 수묵, 각 127*34cm 개인소장" width="628" height="33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근대기에는 사군자 중에서도 ‘난죽’(蘭竹)이 사군자를 대표하는 식물이 되었고, 남아 있는 작품 또한 난죽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간단하다고해서 쉬운 것은 아니나 사군자를 배우는 과정에서의 편의성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를 계절에 맞추어 봄-매화, 여름-난, 가을-국화, 겨울-대나무로 보는 것도 중국 사람들이 겨울 매화, 봄 대나무, 여름 난, 가을 국화라 했던 것과 다른 우리만의 특징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에 대한 애호 분위기로 당시 각 신문의 신년 휘호에 사군자화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형미와 함께 상징성이 큰 사군자화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다짐을 함께 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을 것입니다. 역으로 신년 휘호의 사군자화가 사군자를 대중과 더욱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1900년대 초반 사군자화는 이처럼 급격히 대중화되었고, 사군자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p>
<h2 class="o_title">전통의 새로운 해석</h2>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가 대중화되면서 사군자화의 정신성은 점차 약화되었고,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모 사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한동안 답습되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구성 때문에 필법을 익히기 위한 그림의 입문과정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없지 않았죠.</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러한 가운데 몇몇 동양화가들 사이에서 당시 우리 그림이 항상 외세에 흔들리면서 불안정 상태를 계속해 왔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일었는데요. 전통적인 화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이는 화가들이 있어 사군자화는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96539573ECAFE315439.jpg" alt="김지하, &lt;난초&gt; 종이에 수묵, 30.5*17.8cm , 개인소장" width="242" height="42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의 묵란을 보면 춤을 추는 듯, 흐느적거리는 듯, 바람결에 휘날리는 긴 난 잎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그는 표연히 바람에 휘날리는 난이라는 뜻으로 ‘표연란(飄然蘭)’이라 하고 흉중의 한(恨)을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평론가 유홍준 교수는 김지하의 긴 한 잎은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역사적 체험이자 삶의 농축된 소망의 원형질로서의 한을 담아낼, 난 그림에서 지향할 형식의 틀이라고 해석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29C839573ECAFF242BD5.jpg" alt="장일순,&lt;묵란&gt; 종이에 수묵 30.5*48.5cm, 개인 소장" width="322" height="25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 묵란과 같은 듯 다른 느낌을 무위당(無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의 &lt;묵란&gt;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김지하 난의 정갈하면서도 부드러운 먹의 느낌은 장일순으로 부터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전통적인 난법을 변형하여 일부러 난을 그리려 하지 않은 듯 몇 번의 붓놀림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내었죠. 그의 호인 무위당(無爲堂)은 그의 삶의 철학만이 아니라 그림에도 적용되는 듯합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97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477539573ECAFF07161C.jpg" alt="박영기, &lt;묵죽&gt; 종이에 수묵, 개인 소장" width="197" height="70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김지하와 장일순 묵란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주에서 활동한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 1874~1949)과 그 손자인 화강(化江) 박영기(朴永麒, 1922~?)에 이릅니다. 박영기의 사군자 또한 전반적으로 깔끔한 묵법을 특징으로 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그의 &lt;묵죽&gt;에서 군더더기 없는 먹과 필선으로 그은 부러진 대나무 한 그루는 정갈하고 매끄러운 먹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묵죽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거칠거나 억세지 않아도 충분히 강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은데요. 같은 표현은 박영기의 조부인 차강 박기정의 묵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채색인물화로 유명한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은 중년 이후 그림 전반을 수묵의 문인화풍으로 전환하면서 사군자화를 그 본령을 삼아 즐겨 그렸습니다. 우리 전통화풍과 함께 여러 대가들을 깊이 탐구하여 터득한 현대적인 구도와 적극적인 색채감 등을 자기화 함으로써 전통적 소재를 현대화 할 수 있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3FDF39573ECB000EB55F.jpg" alt="장우성,&lt;국화&gt; 1998년 종이에 수묵담채 34*43.5cm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 width="32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1990년대 이후 그는 만년에 까지 여러 점의 국화도를 그렸는데, 만개한 국화 몇 송이와 간략한 화제를 적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소재에 집중하면서도 여백을 충분히 남겨 여유로운 화면을 연출했습니다. 87세의 노화가가 쓴 “봄에 먹은 마음 그대로 서릿 가을을 견딘다.”는 화제는 단지 국화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현대화가 송수남(1938~2013)의 &lt;매화&gt; 또한 홍매의 전통을 이어 부채에 그린 것입니다. 만개한 홍매의 화려함은 19세기 이후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서 익히 보아 왔지만, 줄기와 꽃에 가한 변화 없는 필선의 단조로움이 도리어 현대적인 느낌을 주죠.</p>
<h2 class="o_title">현대적 변용</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3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94E35573ECC770ABA6B.jpg" alt="김환기, &lt;매화와 항아리&gt; 1957년, 캔버스에 유채, 55*35cm, 환기미술관 소장 " width="243" height="33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수묵으로 간단하게 그린 그림’이라 했던 사군자화는 유화의 소재로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수묵(水墨)과 모필(毛筆)에서 유채로 재료가 바뀌면서 사군자는 그에 맞는 새로운 형태감을 찾아는데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모더니즘의 틀 안에 조선 미술의 미의식을 결합시켜내는 것을 자신의 예술과제로 삼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서양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생각하였다. 그 중 하나가 &lt;매화와 항아리&gt;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김환기에 있어서 이들은 ‘구체화 된 전통’이었다. 그는 이들의 독특한 특징을 단순화하여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금씩 변형시키거나 과장하여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매화, 달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09335573ECC78033B1F.jpg" alt="유양옥&lt;선면매조&gt; 종이에 채색, 34.5*34.5cm, 개인 소장" width="249" height="38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유양옥(柳良玉, 1944~2012)의 &lt;선면매조&gt;에서 청록색의 바탕에 날아가는 새나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김환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아 꺾이고 옹이진 줄기에 간략하게 그린 흰 매화의 깔끔한 조화는 전통적 상징성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조선시대 매화를 좋아한 사람들은 비단이나 밀랍(蜜蠟) 즉 벌집에서 얻은 납으로 매화를 만들어 쉬이 지는 꽃의 아쉬움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벌이 꽃에서 채취하는 꿀의 부산물인 밀랍으로 꽃을 만드니 꽃이 돌고 돌아 다시 꽃이 된다는 뜻으로 윤회매(輪回梅)라 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은 것일까요? 사군자를 철 조각으로 표현한 조환의 작품들이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사군자 영상작업은 전통의 재창조라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43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7D4135573ECC78244370.jpg" alt="조환 &lt;무제&gt; 2015년 철과 폴리우레탄 290*578*15cm" width="436" height="32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는 단순한 구성과 서예의 기법을 활용한 문인취향의 특성으로 인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구성 때문에 문인화의 입문 과정쯤으로 생각하기도 하나, 소재의 상징성이나 사군자화의 역사성 뿐 아니라 수묵의 흑백이 주는 현대적 조형성 등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적지 않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얼마 남지 않은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 전시가<br />
종료되기 전 포스코미술관에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p>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7편. 생활 속의 사군자화</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7%ed%8e%b8-%ec%83%9d%ed%99%9c-%ec%86%8d%ec%9d%98-%ec%82%ac%ea%b5%b0%ec%9e%90%ed%99%94/</link>
				<pubDate>Fri, 20 May 2016 07:00: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포스코에세이]]></category>
		<category><![CDATA[사군자]]></category>
		<category><![CDATA[사군자 공예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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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각 식물마다 타고난 특성이 군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사군자.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1A8F4B573D6E27329887.jpg" alt="&lt;사군자, 다시피우다&gt;전 포스터" width="650" height="343"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각 식물마다 타고난 특성이 군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사군자.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8216;생활 속의 사군자화&#8217;라는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왔는데요.</p>
<p style="text-align: justify;">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사랑을 받았던 사군자는 문학이나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민화, 공예품 등 일반인들의 생활공간 깊숙이 파고들어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다채로운 형태로 활용되었습니다. 공예품이나 민화에서는 오랜 사군자화의 전통을 따른 것도 있지만, 문인들이 지향하는 바와 다른 대중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재미있게 변형되거나 새롭게 해석되기도 했답니다.</p>
<h2 class="o_title">공예품의 사군자 문양</h2>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32DA3E573D6600106F00.jpg" alt="&lt;나전칠기매란무늬함&gt; 19세기, 65*38*19cm, 개인 소장" width="285" height="22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는 그 이미지가 갖는 품격과 도안화하기에 적합한 간결한 형태로 인해 각종 도자기나 생활용품에 즐겨 애용되었습니다. 나전칠기나 철제 그릇의 문양, 시전지판, 필통 등 목공예의 문양, 벼루나 화로 등 석공예에도 사군자는 애용되는 문양이었는데요. 네 가지 식물로 이루어진 사군자는 사각형의 네 면을 장식하기에 적합해 사각형의 필통이나 장식장의 각 면 등에 두루 사용되곤 했죠.</p>
<p style="text-align: justify;">도자기에 사용된 사군자화는 무명 도공들이 그렸을 단순한 그림도 있지만, 전문 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수준급 작품도 있어 그 표현 양식도 다양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65203D573D6B9D23A0BA.jpg" alt="&lt;백자철화매죽문시명호&gt; 17세기, 높이 35.3cm, 지름 30.5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lt;백자청화사군자무늬각병&gt; 18세기, 높이 16.5cm, 개인 소장 " width="450" height="40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17세기 작품으로 전해오는 &lt;백자철화매죽문시명호&gt;에 있는 매화는 산화철 안료로 매화 한 그루를 그린 것입니다. 이 도자기에 그려진 끝이 부러진 줄기에 새 가지가 곧게 난 매화도는 조선 중기에 유행한 매화도가 단순화된 모습입니다. 이 철화백자의 매화도는 반대편에 쓰인 시와 어울려 화폭을 보는 듯 단순화된 멋을 풍기죠.</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076D47573D70F410EA86.jpg" alt="&lt;청화백자난초문필통&gt; 19세기, 높이 16.0cm, 구경13.1cm, 저경 12.0cm, 리움박물관 소장 &lt;청자상감국화문탁잔&gt; 12세기 후반, 총 높이 12.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dth="450" height="35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난 그림이 조선 후기부터 많아지는 것처럼, 도자기에 활용된 난 또한 18세기에 들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사군자의 하나로 그려지지만 단독으로 시문된 경우도 있습니다. 선비들이 즐겨 쓰는 필통, 연적 등 문방구에도 난 문양은 좋은 소재였습니다. 리움박물관 소장 &lt;청화백자난초문필통&gt;의 난은 하단에 지면을 상징하는 선 위에 굵고 가는 필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꽃 또한 농담을 살려 경쾌하게 그려 더욱 회화적인 느낌이 듭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국화가 도자기 문양으로 그려진 예는 고려 시대부터 볼 수 있습니다. 상감청자에 시문 된 국화문은 청초한 들국화 모양입니다. 가는 선으로 파내 흑토와 자토를 메워 넣는 상감청자의 기법 상, 가는 선으로 표현이 가능한 들국화 문양은 매우 선호되는 문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73753D573D6B9D195A07.jpg" alt="&lt;백자철화국화문호&gt;17세기, 높이 13.8cm 호림박물관 소장 &lt;백자진사죽문호&gt; 18~19세기, 높이 20.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dth="450" height="35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국화꽃을 자세히 그려 넣는 경우도 있는데, 철화로 추상화된 국화를 그린 항아리는 투박한 선 맛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답니다. &lt;백자철화국화문호&gt;는 철화 안료로 간략하게 국화 네 송이를 그린 것인데요. 밑 부분이 좁아든 투박한 기형에 군데군데 태토가 드러난 소박한 형태의 항아리에 그려진 국화는 시대를 뛰어넘는 독특한 미감을 보여줍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진사 안료로 그린 &lt;백자진사죽문호&gt;의 대는 청화 안료로 그린 대나무의 섬세함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몰골법의 한 붓으로 줄기와 잎을 연이어 그린 듯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진하고 연한 농담의 차이가 자연스럽습니다. 붉은색을 띤 진사로 그려져 있어 송나라 때 소동파가 붉은 먹으로 자죽(紫竹)을 그렸다고 한 고사를 연상케 합니다. 소동파가 붉은 먹으로 대나무를 그리자 이를 본 지인이 “이 세상에 붉은 대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소동파가 “그럼 검은 대는 또 어디에 있느냐”라며 태연해했다는 것이죠. 그 후로 붉은 안료로 그린 자죽이 유행처럼 그려졌다고 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29C338573D672A07519E.jpg" alt="&lt;은제비녀&gt;19세기말~20세기초 , 길이 13.7cm/25.5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 width="306" height="277" style="c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정절의 상징인 대나무나 매화는 규방 여인들의 자수 문양이나, 머리장식의 문양으로도 즐겨 사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축수(祝壽)나 벽사(僻邪)의 의미를 더하여 생활 곳곳에서 문양으로 쓰였습니다.</p>
<h2 class="o_title">민화로 다시 태어난 사군자</h2>
<p style="text-align: justify;">사군자화는 특히 구도나 문양을 단순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각종 민화의 장식에도 활용되었습니다. 민화의 사군자는 장식적 효과나 의미 변형이 주는 즐거움이 적지 않습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700B38573D672A300BF1.jpg" alt="&lt;문자도 치&gt; 팔폭병풍 중 종이에 채색, 50.8*29.2cm, 미국LA카운티미술관 소장 " width="297" height="50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민화의 매화는 일반 묵매화 전통을 따르면서도 길상의 의미를 더하여 형태가 과장되거나 특이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효(孝)·제(悌)·충(忠)·신(信)·예(禮)·의(義)·염(廉)·치(恥)라는 유교의 핵심 덕목을 강조한 &lt;문자도(文字圖)&gt;에서 매화는 장식적인 기능과 상징성을 나타내는 두 가지 기능을 다 갖추고 그려져 있습니다. ‘치(恥)’자의 검은색 글씨에 핀 연분홍의 꽃은 간결하면서도 장식적인 효과가 뛰어난데요. 또 ‘의롭고 염치를 아는 사람,즉 유교에서 말하는 완성된 인격자로서의 군자’라는 상징에 매화의 곧은 이미지는 그 의미를 더해줍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9B238573D6728072263.jpg" alt="필자미상, &lt;장생도&gt;19세기 가회박물관 소장" width="263" height="52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그런가 하면, 민화 &lt;백동자도(百童子圖)&gt;에서 매화는 다산(多産)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매화나무에 다래다래 열리는 매실은 그 수가 많은 것으로서 다산을 상징합니다. 일찍이 중국에서 매실을 던져 사랑을 구하던 습속에서도 사랑의 매개체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난은 독립된 소재로서 보다는 책가도나 장생도 중 자연의 일부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lt;책거리(冊─)&gt;에 그려진 난은 관상 가치가있는 여러 물건들을 배치해 사랑방의 품격을 높이는 그림의 한 켠에서 그 방주인의 인품을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담당하고 있는 듯합니다. 드물게 난이나 사슴, 바위, 불로초, 물과 같은 십장생류와 함께 장생 사상을 담아 그려지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058738573D6728221337.jpg" alt="필자미상&lt;화조도10곡병&gt; 중 &lt;국화&gt;,종이에 채색 55*37cm, 리움박물관 소장" width="300" height="55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그에 반해 국화는 군자의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책가도(冊架圖), 초충도(草蟲圖), 소과도(蔬果圖) 등 문인 취향의 민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소재였습니다. 《화조도10곡병풍》 중의 &lt;국화(菊花)&gt;는 괴석, 나비, 화려한 깃털의 꿩 등과 함께 그려져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죠.</p>
<p style="text-align: justify;">국화꽃도 여러 색이 어울려 있고, 형태는 크고 활짝 피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국화는 늦가을에 핀 고고한 상징보다는 아름다운 색의 꽃으로 부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함께 그려진 나비도 화려한 제비나비 한 쌍이며, 꿩도 암수 모두 화려한 색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꽃처럼 장식을 한 이끼 낀 바위도 넣음으로써 부부화합의 의미를 더하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민화에 그려진 대나무는 일반적인 군자 이미지보다는 부귀 장수와 같은 길상적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는 전설에 따라 대나무와 봉황이 함께 그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봉황이 깃드는 곳이 오동나무이다 보니 오동나무와 봉황, 대나무와 봉황 혹은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함께 등장하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0BA338573D67281E1CCE.jpg" alt="필자미상(해산) &lt;봉황도&gt; 종이에 채색 102*37cm, 개인소장" width="262" height="666"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text-align: justify;">민화 &lt;봉황도(鳳凰圖)&gt;는 그러한 내용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매우 평면적이면서도 봉황 깃이나 대나무의 죽간, 솔방울 등은 마치 공예품처럼 도안화되었는데요. 이 그림에는 ‘해산(海山)’이라는 민화에는 흔치 않은 그린 사람의 호와 싯구가 함께 적혀 있어 흥미롭죠. 더구나 대나무 한 줄기는 위가 잘려져 있어서 절의를 상징하는 부러진 대나무의 전통이 반영되어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이처럼 민화 속에 사군자가 스며든 것은 한편으로는 사군자 문화가 그만큼 대중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그 의미 변용이 있기는 하였으나 민중들도 사군자의 정신적 가치를 공유할 만큼 민중의식이 상승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가 전해드리는 사군자 이야기,<br />
다음 시간에 전해드릴 마지막 편을 기대해주세요!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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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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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6편. 허심(虛心)의 공간미 담은 대나무 그림</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6%ed%8e%b8-%ed%97%88%ec%8b%ac%e8%99%9b%e5%bf%83%ec%9d%98-%ea%b3%b5%ea%b0%84%eb%af%b8-%eb%8b%b4/</link>
				<pubDate>Tue, 17 May 2016 07:00: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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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그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여섯 번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6BD645573977E8308FBF.jpg" alt="&lt;사군자, 다시피우다&gt;" width="650" height="343"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justify; clear: none;">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그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여섯 번째 이야기로, 대나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 합니다!</p>
<p>옛사람들에게 대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주는 존재였습니다. 뾰족이 올라온 죽순은 더없이 좋은 먹거리였고, 각종 생활 도구의 재료로 쓰여 삶을 편리하게 했는데요. 생활 속의 이로움과 함께 문인들에게는 유교를 토대로 형성된 동아시아 지성의 상징물로서 사랑을 받았죠.</p>
<p>대나무에 대한 애정도 여러 가지여서 사람들은 여건에 따라 대숲을 조성하거나, 화분에 길러 가까이 하기도 했고, 이를 그림으로 대신해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묵죽에 대한 애호는 끊임이 없어, 문인들 스스로도 즐겼을 뿐 아니라 화원 화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그려졌는데요.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 산수 인물보다 묵죽에 더 많은 배점이 주어진 것은 묵죽화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p>
<h2 class="o_title">매운 바람을 견디는 절개</h2>
<p>조선시대 최고의 묵죽 화가로 꼽히는 인물은 단연 탄은(灘隱) 이정(李霆, 1554∼1626)입니다. 세종대왕의 현손으로 석양군(石陽君)이라는 작호를 받았고, 서화에 능하여 선조의 총애를 받았던 종실 출신의 화가입니다. 그는 굵은 대나무를 힘차게 그려낸 통죽(筒竹), 바람을 맞고 선 풍죽(風竹), 비 맞아 잎이 쳐진 우죽(雨竹), 눈을 덮고 꿋꿋하게 서있는 설죽(雪竹) 등 다양한 대나무의 모습을 여러 기법을 사용하여 자유자재로 그려내었죠.</p>
<p>이정 노년의 원숙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lt;죽도(竹圖)&gt;입니다. 이 작품은 하단에는 바위를 배치하고 농묵으로 그려낸 대나무와 상단에 담묵으로 중단의 대나무와 비슷한 모습을 그린 삼단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담묵으로 농묵의 가지와 비슷하게 그린 가지는 마치 그림자 같기도 하면서 화면에 변화를 주었는데요. 우측 하단에 쓰인 관서를 통해 그의 나이 69세인 1622년 봄에 만년 은거처인 공주의 월선정에서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39px; text-align: center;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A82415739770623A09B.jpg" alt="이정,  &lt;죽도(竹圖)&gt; 비단에 먹, 119*57.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39" height="43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이정 묵죽의 다양한 모습은 41세인 1594년에 완성한 『삼청첩(三靑帖)』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그의 개인 소장 &lt;풍죽(風竹)&gt;은 현재 통용되는 오만 원 권에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유명한 이정의 화풍은 한국적인 묵죽화의 전형을 이루어 후기 양식의 바탕이 되었습죠. 이정의 조카인 김세록(金世祿,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학자이자 독특한 전서의 서예가로도 유명한 허목(許穆, 1595-1682), 좌의정을 지낸 조익(趙翼, 1579-1655) 등도 당시 묵죽화를 남겼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8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45E9405739768A13ED4C.jpg" alt="조익, &lt;죽도&gt; 종이에 채색 100.9*5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86" height="52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조익의 &lt;죽도(竹圖)&gt;는 굵은 왕대의 흔적 옆에 새로 난신죽(新竹)을 표현한 듯 푸른색으로 생생한 대나무를 그려 이채롭습니다. 중앙의 대나무는 화면 위쪽에서 더 이상 몸을 펼 수가 없다는 듯 옆으로 굽어있는데요. 마치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굽혀야만 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죠. 조익이 살았던 선조에서 효종 때까지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등 조선시대 가장 치욕스러운 전쟁이 잇달아 일어났는데요. 그림 속의 구부러진 대나무는 이 시기에 벼슬을하였던 사대부로서 하늘을 볼 수 없는 부끄러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p>
<h2 class="o_title">비어있는 공간의 아름다움</h2>
<p>조선 후기에 묵죽화로 유명한 화가로는 유덕장(柳德章, 1694-1774),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신위(申緯, 1769-1845), 임희지(林熙之 1765-?)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묵죽화는 각자 조금씩 개성있는 화풍을 형성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5973405739768B02632E.jpg" alt="유덕장,&lt;목죽도6곡병&gt; 종이에 수묵, 각 92.5*52.5cm, 개인소장" width="629" height="32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유덕장은 조선 초기의 묵죽 화가인 유진동의 6대 손으로 호는 수운이며,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사대부입니다. 그는 많은 유작을 남겼는데, 추사 김정희가 그의 묵죽도의 제에서 “수운의 죽은 창경하고 고졸하여 팔목에 금강저가 갖추어 있다”고 한 것처럼 대나무의 굳건한 이미지를 표현한 듯 날카롭고 강한 모습의 통죽을 잘 그렸죠. 또한 녹죽, 금니로 그린 대나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린 그림은 대나무의 표현 영역을 한층 넓혀주었습니다.</p>
<p>사군자에 두루 능했던 강세황은 “대나무와 매화를 그릴 때는, 공간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공간을 여유 있게 구성해 시원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그가 매화나 대나무와 같은 사군자를 그릴 때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세황의 묵죽을 가만히 보면 전체적으로는 유연하면서도 강직한 대나무의 특징이 잘 드러나 보이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6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46FF405739768B12604E.jpg" alt="신위&lt;선면목죽&gt; 종이에 수묵, 17.4*56cm, 개인소장" width="369" height="32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강세황의 묵죽에 이어 신위의 묵죽에서도 대나무 줄기를 길게 남겨 여유와 멋이 느껴집니다. 신위는 판서와 도승지를 지낸 전형적인 사대부로 시·서·화에 모두 능한 문인 화가입니다. 그의 묵죽은 강세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실제 남아있는 작품에서 보면 강세황에 비해 줄기가 가늘고 탄력이 있으며, 잎도 필치가 부드러워 더욱더 고아한 풍취가 있습니다. 신위는 특히 시에 뛰어나 그의 묵죽화에는 단아한 그의 글씨로 쓴 적절한 제시가 함께 어울려 묵죽의 품격을 높여줍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2B4D405739768C2609D9.jpg" alt="김홍도, &lt;목죽&gt; 종이에 수묵, 23*27.4cm, 간송미술관 소장" width="329" height="31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화면 구성의 시원한 느낌은 김홍도(金弘道, 1745-?)의 &lt;묵죽(墨竹)&gt;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선방향으로 화면을 가로질러 대나무 줄기가 비스듬히 서 있고 줄기의 아래쪽에는 댓잎이 무성하게 나있는 구도로, 대나무의 중간 부분을 클로즈업해 시원스럽게 구성한 것이죠. 군자의 상징으로서 사대부들이 즐겨 그렸다는 묵죽화이지만화원 화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그려졌습니다. 화원 화가이지만 사실 김홍도는 사대부 못지않은 풍류를 즐겼던 화가였죠.</p>
<h2 class="o_title">댓잎에 서린 문인들의 의취</h2>
<p>이후 조선 말기에는 우봉 조희룡(趙熙龍, 1797-1859), 소치 허련(許練, 1809-1892), 신위의 아들인 애춘 신명연(申命衍, 1809-?), 춘방 김영(金瑛, 1837-?), 사호 송수면(宋修勉, 1847-?), 석촌 윤용구(尹用求, 1853-1939) 등이 개성 있는 묵죽을 많이 남겼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8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민영익, &lt;목죽&gt; 종이에 수묵, 127.8*5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43B0405739768A1588EA.jpg" alt="" width="288" height="53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조선 말기와 근대의 묵죽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운미 민영익(閔泳翊, 1860-1914)과 해강 김규진(金圭鎭, 1868-1933)의 묵죽에서 일 것입니다. 민영익은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로, 당시의 혼란스러운 나라 사정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고종의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상해에 피신해 있으면서 청대의 오창석(吳昌碩, 1844-1927) 등 유명한 서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개성 있는 작품을 남겼는데요. 그의 &lt;묵죽(墨竹)&gt;에서 보이는 끝이 잘린 대나무는 그의 묵란에서 보이는 난 잎의 뭉툭한 모습과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개성을 보여주는 부분이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4CD4405739768A0DD1AF.jpg" alt="김규진&lt;설죽(10폭 병풍)&gt; 천에 수묵, 130*37.4cm, 인주문화재단 소장 " width="628" height="37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민영익의 묵죽과는 또 다른 개성을 보인 것이 김규진의 묵죽입니다. 그는 1855년부터 8년간 청나라에 유학을 했고, 1915년에는 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해강죽난보(海岡竹蘭譜)』와 『서법진결(書法眞訣)』이란 저서를 남겼는데요. 그는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를 그렸으며, 특히 굵은 통죽(筒竹)을 잘 그려 이후 근대화단에 통죽이 크게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p>
<p>김규진의 뒤를 이어 근대 묵죽화의 길을 활짝 연 사람이 김진우(金振宇, 1883-1950)와 고암 이응로(李應魯, 1904-1989)입니다. 김진우는 김규진이 개설했던 서화연구회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으며, 사군자를 두루 잘 했으나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습니다. 그의 묵죽은 마치 바람결이 느껴질 듯 떨림이 있는 잎과 현대적인 구성미가 돋보입니다. 김진우는 대나무 그림을 팔아 독립군 자금을 댔다고 할 만큼 항일운동에도 적극적인 화가였죠. 대쪽 같은 선비를 상징하는 대나무 그림이 나라를 구하는 독립운동자금으로 쓰였다니 그 의미가 더욱더 깊게 느껴집니다.</p>
<p>묵죽도는 현재까지도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집니다. 대나무의 강한 생명력만큼이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죠. 곧고 푸른 대나무는 그 청정하고 굽힐 줄 모르는 기상으로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이끌어주는 스승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3B61405739768B1C66A3.jpg" alt="김진우, &lt;묵죽(불유분용)&gt; 종이에 수묵 140.5*39cm, 개인 소장" width="248" height="75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와 함께 보는 사군자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br />
포스코 미술관 전시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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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5편. 서리를 이긴 은은한 향취의 국화 그림</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5%ed%8e%b8-%ec%84%9c%eb%a6%ac%eb%a5%bc-%ec%9d%b4%ea%b8%b4-%ec%9d%80%ec%9d%80%ed%95%9c-%ed%96%a5%ec%b7%a8/</link>
				<pubDate>Wed, 11 May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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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 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6297485731709305C641.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width="650" height="371"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 이야기! &#8216;국화와 국화 그림의 이야기&#8217;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보실까요~?</p>
<h2 class="o_title">세속과 벗하지 않는 은자</h2>
<p>옛 문인들은 국화 한 포기를 얻으면 봄, 여름 고이 갈무리하여 가을에 홀로 피어나는 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고, 화분에 가득 담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흔한 꽃이지만 의미도 깊고 귀한 국화를 언제나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국화 그림인데요. 인내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상징으로서 시문과 서화는 물론 장식미술의 소재로서도 국화는 사랑을 받았습니다.</p>
<p>조선시대 초·중기까지만 해도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궁중을 중심으로 국화를 감상하고, 국화주를 마시며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주고받는 행사를 했었습니다. 조선시대 일찍부터 국화 그림이 그려진 기록은 있지만 실제로 그림이 남아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18114C57316E562C15EB.jpg" alt="홍진구,&lt;국화&gt; 종이에 채색, 37.6*32.6cm, 간송미술관 소장" width="259" height="40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17세기에 활동하였던 홍진구의 국화 그림은 조선시대 국화 그림 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입니다. 왼편 하단에서 피어난 한 그루의 국화와 나리꽃처럼 생긴 붉은 꽃을 함께 그린 것인데요. 가지와 잎은 먹을 툭툭 찍고 농묵으로 잎맥을 그려 자연스러운 국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왼편 상단에 쓴 방장산옹사(方丈山翁寫)라는 호 때문에 홍진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p>
<p>국화에는 여러 색이 있지만 옛날에는 어떤 색깔보다도 노란 국화를 으뜸으로 생각했다고 하죠. 노란색은 다른 색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대지의 색깔로서 음양오행에서는 중앙을 상징하고, 이는 곧 왕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수묵을 위주로 하였지만 담채를 더하여 맑은 채색이 주는 담백함과 섬세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야위고 소박한 국화꽃은 누구와도 벗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순박함이 있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3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18AD4C57316E502B2506.jpg" alt="윤두서, &lt;괴석죽국&gt; 종이에 수묵, 27.5*56cm, 개인소장" width="339" height="21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묵국도가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인데요. 국화 그림은 국화만 단독으로 그린 경우보다는 괴석이나 대나무 등과 국화를 함께 그린 경우가 많습니다. 자화상과 풍속화로 유명한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lt;괴석죽국(怪石竹菊)&gt;은 부채에 괴석, 대나무와 함께 국화를 그린 것입니다.</p>
<p>꽃잎 하나하나를 가는 선으로 꼼꼼히 그리고 이에 호분을칠하여 흰 국화의 느낌을 살렸죠. 괴석이나 대나무, 국화가 거의 같은 비중으로 그려져 있고, 국화에는 난인지 혹은 들풀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기다란 잎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괴석이나 대나무와 함께 국화를 그리는 형식은 당시 유행하던 여러 화보(畵譜)에서도 예로서 다루어지던 것입니다.</p>
<p>윤두서의 경우 『고씨화보(顧氏畵譜)』를 소장하였을 뿐 아니라, 화보를 보면서 그림 공부를 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요. 국화 그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p>
<h2 class="o_title">서리를 이겨낸 절개</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4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110C4C57316E56333029.jpg" alt="허필, &lt;국화&gt; 종이에 옅은 채색, 26.7*18.7cm, 서울대박물관 소장" width="254" height="37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18세기 문인 화가 연객(烟客) 허필(許佖, 1709∼몰년 미상)의 〈국화(菊花)〉는 단장을 한 듯 꽃송이가 단정한데요. 중앙에는 가장 큰 가지를 두고 그 아래에 조금씩 키 작은 가지를 두어 균형을 잡았고, 땅에는 잡풀을 함께 그려 안정감 있는 구도를 이루도록 했죠. 수묵에 연한 담채를 하여 크게 공들여 그린 것 같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향기가 풍기는 것은 그의 얽매이지 않는 성품 때문일 것입니다.</p>
<p>시 읊기를 좋아했고 전서와 예서를 잘 썼던 허필은 가난한 오두막집 비탈진 계단에 갖가지 국화를 줄지어 심어놓고 그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세상일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리를 떠난 선비와 국화는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친구인 모양입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7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1A414C57316E5222230B.jpg" alt="정조, &lt;야국&gt; 비단에 수묵, 51.4*84.6cm, 동국대박물관 소장" width="257" height="426"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조선 22대 임금인 정조(正祖, 1752~1800)의 &lt;야국(野菊)&gt;은 담백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려진 국화와 풀벌레의 재치 있는 표현으로 문예부흥을 주도해나간 슬기로운 군왕의 면모가 엿보입니다. 상하로 긴 화면 좌측 중앙에 둥근 바위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두 포기, 가운데 낮게 한 무리의 국화가 피어있죠.</p>
<p>꽃은 엷은 먹으로 부드럽게 그린 반면 잎은 끝이 날카롭고 좀 더 진하게 표현했는데요. 때로는 진하게 때로는 연하게 먹이 마치 살아있는 듯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생동감이 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54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33C14C57316E511204B0.jpg" alt="이인상&lt;병국도&gt; 종이에 먹, 28.6*1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54" height="46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데, 말라비틀어진 국화 한 포기를 그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18세기에 활동하였던 문인 화가 이인상(李麟祥, 1710~1760)입니다. 그는 갈필로 스케치를 하듯이 고개 숙인 국화 한 포기를 그리고, 이에 ‘병든 국화를 겨울날 그렸다(南溪冬日寫病菊)’고 써놓았죠.</p>
<p>그런데 시든 국화 한 그루는 마치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요. 이인상은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출이었기 때문에 높은 벼슬은 할 수가 없어서 글씨와 그림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p>
<p>18세기에는 국화재배가 늘고, 이를 완상하는 문화도 발달하면서 국화도가 급격히 많아졌는데요. 국화는 대부분 단독으로 그리기보다는 바위나 대나무, 들풀과 함께 그려 그 의미를 더하고 구도상 안정감을 더해주었죠. 국화 종류가 많아진 만큼 그림 속의 국화도 꽃잎이 길고 짧고, 가늘기도 하고 도톰하기도 하면서 국화 그림도 다채롭게 전개되었습니다.</p>
<h2 class="o_title">동쪽 울타리에 핀 아름다운 꽃</h2>
<p>19세기는 조선시대 회화 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국화도에도 형식 면에서나 화풍에 여러 변화를 보였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형식상의 변화는 화폭이 상하로 길어지고 제시가 많아진다는 점인데요. 필치가 분방해지고 장식적인 경향을 띠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12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19DB4C57316E512A2388.jpg" alt="윤제홍,&lt;난국괴석도&gt; 종이에 수묵, 24.5*38cm, 개인 소장" width="312" height="21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 1764～1840)의 &lt;난국괴석도(蘭菊怪石圖)&gt;는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린 듯 독특한 필법으로 그의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인데요. 마치 동물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처럼 뭉쳐진 바위 아래서 뻗어 나온 국화와 난의 형태는 선뜻 수긍할 수 없는 파격의 미가 있습니다. 괴석과 국화도 독특하지만 오른 편에서 쓰기 시작하여 왼편으로 연결되게 한 화제 또한 파격적이죠.</p>
<p>“윤경도 제홍은 읊노라 난초는 빼어나고 국화는 향기롭네. 가인을 그리워함이여, 능히 잊지 못하리(尹景道濟弘言. 蘭有秀兮, 菊有芳. 懷佳人兮, 未能忘).”라 했는데요. 화제를 쓴 글씨도 그림과 어울려 개성을 더해줍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1C0C4C57316E5028069C.jpg" alt="안중식,&lt;동리가색&gt; 종이에 수묵, 17*80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 width="246" height="52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집을 둘러친 울타리는 사방에 있음에도 유난히 동쪽 울타리에 핀 국화를 그렸다는 그림이 많습니다. 이는 중국 육조시대 시인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음주(飮酒)』라는 시 중에 “동쪽 울타리에 핀 국화 한 송이를 꺾어, 망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는 구절 때문입니다. 벼슬을 버리고 한가로이 살아가는 그의 삶의 한 장을 보여주는 구절로 많은 선비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고, 국화는 응당 동쪽 울타리에 피어있는 것처럼 인식되었죠.</p>
<p>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lt;동리가색(東籬佳色)&gt;을 보면 괴석과 국화, 들풀이 어울린 구도는 앞서 많이 보던 그림과 비슷하지만 국화 꽃잎이 유난히 길고 꽃송이도 큽니다. 꽃이 큰 국화 그림은 그의 작품에서뿐 아니라 같은 시기 긍석(肯石) 김진만(金鎭萬, 1876~1934)이나 화산(華山) 김일(金鎰, 미상~1934이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어서 이 시기 국화도의 특징으로 보입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5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8384C57316E4F1E27AA.jpg" alt="김진만&lt;석국&gt;종이에 먹 140*34cm 개인 소장" width="245" height="74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또 한편으로는 화가들이 국화를 선비들의 뜻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식물로만 그린 것이 아니라 보기에 좋은 크고 탐스러운 것을 선호한 것도 한 이유일 것입니다.</p>
<p>국화도는 근대로 이어지면서 군자나 은일을 상징하던 모습보다는 장식적인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요. 국화를 표현하는 방식은 시대나 화가에 따라 다르지만 복잡한 세상을 떠나 조용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벗이 되어 올해도 어느 울타리 아래서 말없이 피어날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22334457397B0E353150.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가 소개해드리는 국화와 국화 그림의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br />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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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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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4편. 맑은 향기 머금은 난 그림</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4%ed%8e%b8-%eb%a7%91%ec%9d%80-%ed%96%a5%ea%b8%b0-%eb%a8%b8%ea%b8%88%ec%9d%80-%eb%82%9c-%ea%b7%b8/</link>
				<pubDate>Wed, 04 May 2016 10:06: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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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 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네 번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69274557286030170CAB.jpg" alt="&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 width="650" height="371"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네 번째 이야기! 난과 난 그림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절제된 엄숙미</h2>
<p>난은 꽃 중의 군자로 일컬어져 고결함을 상징하는 오랜 세월 동안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죠. 오늘날에도 동양화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시작할 만큼 필획의 기본으로 삼는 문인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난은 고결한 덕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옛 문인들은 난 그리는 자세와 기법에 삼엄한 수칙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법식에 따라 그리는 것을 꺼렸고, ‘난을 친다’고 하는 것처럼 머뭇거림 없는 운필로 내면의 의취(意趣)를 표출하였죠. 따라서 묵란의 성패는 형태의 재현이라기보다 형상의 바깥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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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6EB93B572868E906D861.jpg" alt="이정, &lt;묵란&gt; (17세기, 비단에 금니, 크기미상, 《화원별집》소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385" height="478" /><figcaption>이정, &lt;묵란&gt; (17세기, 비단에 금니, 크기미상, 《화원별집》소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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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조선시대 난 그림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그려졌던 것으로 보이나 기록에 의할 뿐 조선 초기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본격적인 묵란 작품은 조선 중기 묵죽의 대가로 알려진 탄은(灘隱) 이정(李霆, 1541∼1622), 화원 화가였던 이징(李澄, 1581∼?), 그리고 목판화로 남아있는 선조(宣祖)의 묵란 등입니다.</p>
<p>이정의 &lt;묵란(墨蘭)&gt;은 검은 비단에 금물로 바람에 날리는 난 한 포기를 묘사한 것인데요. 좌측 하단 지면에서부터 화면을 꽉 채운 대각선 구도를 보이며, 비스듬히 길고 매끄럽게 뻗은 난엽은 좌우대칭으로 균형을 이룹니다. 중간중간 붓을 돌리듯 떼었다 다시 이어가는 삼전법(三轉法)으로 끊어질 듯 이어져 보일 만큼 필선의 굵기에 변화를 주었죠. 방사 형태로 뻗은 잎은 시원스러운 리듬감이 있고, 잎 사이에 짧게 세 송이 꽃을 그려 넣었는데요. 난 꽃은 정세하고 강한 필선으로 꼼꼼하게 묘사하였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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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63043B572868E9127256.jpg" alt="이징, &lt;묵란&gt; (종이에 먹, 29.8×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44" height="374" /><figcaption>이징, &lt;묵란&gt; (종이에 먹, 29.8×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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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징의 작품으로 전하는 &lt;묵란(墨蘭)&gt; 역시 이정의 묵란과 비슷한 형태감을 보입니다. 이징의 묵란은 현전 작품이 많지 않은 조선시대 전반기 난 그림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후에 보게 될 다른 작품보다는 좀  둔한 느낌을 주지만 고졸한 기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p>
<p>이징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문인 택당(澤堂) 이식(李植, 1584∼1647)의 시 &lt;난&gt;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난에 대한 인식을 살필 수 있습니다.</p>
<p>난이 속세의 티끌을 묻히는 것을 싫어해 산중 바위 골짜기 물가에 홀로 피어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자태는 청초하고 향은 그윽하여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고고한 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이는 난에 대한 오랜 찬사입니다. 잡풀 속에서도 그윽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난의 품격은 덕을 갖춘 사람과 같은 것이죠.</p>
<div style="background-color: #dbe8fb; margin-bottom: 1.6em; border: #79a5e4 1px dashed; padding: 10px;">
<ul>
<li>如傀人間被俗塵     인간이 속세에 물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li>
<li>叢生岩谷澗之賓     바위 골짜기 물가에 손님으로 살고 있네.</li>
<li>雖有令色如嬌女     비록 고운 색은 아름다운 여인과 같지만</li>
<li>自有幽香似德人     절로 향기 그윽하여 덕인을 닮았구나.</li>
</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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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o_title">다채로운 변화 속의 격조</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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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74133457286C6405E3EE.jpg" alt="강세황, &lt;선면묵란&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각 21.6×56.1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width="650" height="324" /><figcaption>강세황, &lt;선면묵란&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각 21.6×56.1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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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난 그리는 법에 의하면 난 잎이 자연스럽게 휘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당두(蟷頭), 잎의 끝을 뾰족하게 빼는 서미(鼠尾), 두 잎이 교차할 때 이루는 모양이 봉황의 눈과 같다 하는 봉안(鳳眼) 등 여러 법식이 있는데요. 이러한 기본 법칙에 따라 운필을 하되 화가들은 이를 나름대로 운용하여 각자 개성 있는 난을 만들게 됩니다. 같은 모양의 글씨를 쓰면서도 각자의 필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죠.</p>
<p>18세기 문인 강세황의 &lt;묵란(墨蘭)&gt;은 잎을 지나치게 빠르게 하거나 기교를 부린 것이 아닙니다. 대여섯 개의 잎과 몇 개의 꽃으로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렸는데요. 한자락 미풍이 살며시 지나간 듯 부드러운 잎은 단아한 격조를 살린 문인화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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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02D3B572868EA02CF78.jpg" alt="임희지, &lt;난죽석도&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87.1×42.4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width="410" height="841" /><figcaption>임희지, &lt;난죽석도&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87.1×42.4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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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난은 군자의 꽃으로 불리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사람이나 미인의 향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임희지(林熙之, 1765~?)의 난 그림은 마치 미인을 염두에 두고 그린 듯 빼어난 모습이 요염하기까지 하죠. 임희지의 &lt;난죽석도(蘭竹石圖)&gt;는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나온 괴석과 괴석 뒤로 뻗어 나온 대나무, 그리고 괴석 아래 활달하고 힘찬 난이 자신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왼편에는 이 세 가지를 한 폭에 그린 뜻을 적었습니다.</p>
<p>“원장(元章)의 돌, 자유(子猷)의 대나무, 좌사(左史)의 난초, 이를 몽땅 그대에게 주는데 그대는 무엇으로 보답하려는가?”</p>
<p>원장은 북송 대 문인 화가인 미불(米芾)을 가리킨 자인데요. 그는 돌을 좋아하여 괴석을 향해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유는 동진의 서예가 왕휘지(王徽之)로서 하룻밤도 대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묵을 수 없다며 처소에 대를 옮겨 심게 했다는 인물이죠. 좌사는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을 일컫습니다. 이들을 모두 한 폭에 그려 석(石), 난(蘭), 죽(竹)을 한 번에 준다고 한 호기로운 화제들이죠.</p>
<p>18세기 들어 난은 이전 시기에 비해 작품도 많아졌을 뿐 아니라 화풍도 다채로워졌는데요. 강세황, 이인상, 임희지의 난 모두가 다른 느낌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들의 묵란에서는 새로 발간되어 우리나라에서 유통되었던 여러 화보들의 영향도 감지되지만, 화가 각각은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독특한 묵란화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p>
<h2 class="o_title">묵란화의 전성기</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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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45DA3B572868E71F1CA8.jpg" alt="김정희, &lt;불이선란&gt; (종이에 수묵, 55×31.1cm, 개인 소장)" width="410" height="710" /><figcaption>김정희, &lt;불이선란&gt; (종이에 수묵, 55×31.1cm, 개인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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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전 시기부터 난 그림이 있었지만, 묵란에 일가를 이룬 전문 화가들이 나타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난을 잘 그렸을 뿐 아니라, 난법을 논하였고, 《난맹첩》을 통해 다양한 난법을 후배들에게 전하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그의 난법을 배운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이하응(李昰應, 1820~1898) 등에 의해 우리나라 묵란화는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p>
<p>추사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로 유명한 김정희의 &lt;불이선란(不二禪蘭)&gt;은 난 잎은 거친 붓으로 담담하게 몇 줄을 그었으나 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치우친 난의 초탈한 경지를 드러내는 듯하죠.</p>
<p>김정희는 이 그림에 스스로 쓰기를 “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문득 그려낸 것”이라 하였습니다. 가슴 속에 20년간 응축된 난의 실체가 이러한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죠.</p>
<p>또한 이는 유마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설법하였던 선(禪)의 경지를 난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요. 그래서 이 난을 선과 난이 서로 둘이 아니라는 뜻의 ‘불이선란’이라고 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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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2B553457286C65353ED0.jpg" alt="김정희, &lt;시우란&gt; (종이에 수묵, 23×85cm, 개인 소장)" width="650" height="174" /><figcaption>김정희, &lt;시우란&gt; (종이에 수묵, 23×85cm, 개인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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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정희는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에 ‘난은 그림 그리는 법으로 해서는 안되며, 서법으로 난법을 삼아야 하며, 삼전법(三轉法)을 적절히 써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들 상우를 위해 그려 주었다고 전해지는 그림이 &lt;시우란(示佑蘭)&gt;이죠.</p>
<p>김정희가 19세기에 양반 문인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조희룡은 중인 화가들의 대표적인 화가였는데요. 조희룡은 김정희의 글씨체를 모방하기도 하였고 난 그림도 김정희의 난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김정희와 비슷하지만 조희룡의 글씨는 김정희 추사체의 각진 예서보다는 더 둥글고 부드러운 맛이 있습니다. 난 그림은 마치 난 잎을 들에 난 풀처럼 흐드러지게 그려 현란함과 화려함을 보여줍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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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6DF93B572868E8342191.jpg" alt="이하응,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49×66cm, 인주문화재단 소장)" width="410" height="920" /><figcaption>이하응,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49×66cm, 인주문화재단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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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조희룡과 마찬가지로 김정희의 난 그림을 배웠다고 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lt;묵란화(墨蘭畵)&gt;는 여러 형식을 보이는데요. 한두 포기의 난을 독립적으로 그리거나 다른 기물과 함께 그리기도 하였는데, 위아래로 긴 화폭에 몇 무리의 난을 바위와 함께 그린 형식이 가장 많습니다. 난엽은 잎 끝이 가늘고 변화가 심한 특징을 보이죠.</p>
<p>김정희 묵란의 투박하고 필획의 변화가 적은 특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김정희는 예서를 바탕으로 사란(寫蘭)을 한 반면, 이하응은 초서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찾기도 합니다.</p>
<p>가는 난이 절벽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김정희와 이하응의 필의(筆意)를 철저하게 따라 그렸던 김응원의 &lt;묵란(墨蘭)&gt;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p>
<p>그는 당시 이하응에게 들어온 그림 청탁을 대신 그렸다고 할 정도로 이하응과 유사한 면을 보입니다. 그러나 김응원의 묵란은 이하응에 비해 힘 있는 필선과 활달함으로 그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보이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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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76713B572868E81BB5CD.jpg" alt="민영익,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29.5×59cm, 인주문화재단 소장 소장)" width="410" height="886" /><figcaption>민영익,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29.5×59cm, 인주문화재단 소장 소장)</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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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같은 시기 민영익의 &lt;묵란(墨蘭)&gt;은 위태로운 나라를 등지고 타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그의 고뇌와 우울한 심경을 드러내는데요. 마치 잘린 듯 끝이 뭉툭한 난 잎은 현실에서의 좌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 같죠. 더구나 그의 묵란 중 뿌리를 드러낸 &lt;노근묵란(露根墨蘭)&gt;은 뿌리내릴 땅이 없는 나라 잃은 설움을 그대로 드러낸 듯합니다.</p>
<p>김정희, 이하응 등 19세기 대가들의 활약으로 크게 유행하게 된 묵란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근래에는 난 재배법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난을 기르고 여러 의미로 선물하기도 합니다.</p>
<p>풀숲 속에 묻혀서도 향기를 발하던 옛적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난 잎의 빼어남과 꽃의 고결함으로 맑고 향기롭게 살려는 사람들의 이상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가 소개해 드리는 난과 난의 그림에 얽힌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br />
다음 편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1C339570F2BC512C63D.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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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2편. 사군자 고사(故事)와 고사화</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2%ed%8e%b8-%ec%82%ac%ea%b5%b0%ec%9e%90-%ea%b3%a0%ec%82%ac%e6%95%85%e4%ba%8b%ec%99%80-%ea%b3%a0/</link>
				<pubDate>Wed, 20 Apr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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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포스코에세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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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사군자가 유명해진 것은 사군자에 얽힌 옛 문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죠.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화(故事畵)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고사의 주인공인 문인들을 흠모했던 후대인들에게 사군자의 의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Hello, 포스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6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77F43A5715F80423F0E7.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width="660" height="376"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사군자가 유명해진 것은 사군자에 얽힌 옛 문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죠.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화(故事畵)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고사의 주인공인 문인들을 흠모했던 후대인들에게 사군자의 의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p>
<p>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 연재하는 포스코미술관 사군자 특집 2편! 사군자에 얽힌 옛 문인들의 고사(故事)와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화,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아</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0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537893B5715F7EF35B8EE.jpg" alt="심사정&lt;파교심매도&gt; 조선 1766년 비단에 담채, 115*50.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희룡,&lt;매화서옥도&gt; 조선 19세기 종이에 담채, 130*3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309" height="38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매화에 군자의 상징성이 더해진 것은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탐매(探梅) 고사’ 때문인데요. 그는 한 겨울, 그 해 맨 처음 피는 매화를 찾기 위해 눈 내린 산속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탐매는 이후 많은 문인들에 의해 선비의 멋이자 풍류로 여겨졌죠.</p>
<p>&#8216;탐매 고사’ 이후 매화는 북송대의 시인 임포(林逋, 967∼1028)의 이야기로 은일의 상징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임포는 오늘날 중국 항주 서호의 고산(孤山)에서 매화를 심어 감상하고 매화시를 읊으며 살았는데요.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매화를 아내 삼고[梅妻], 학을 아들 삼고[鶴子], 사슴을 심부름꾼[鹿家人] 삼아 20년 동안 성시에 내려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p>
<p>이러한 삶 때문에 임포의 이야기는 은거를 꿈꾸는 많은 선비들이 이상으로 여겼는데요. 맹호연의 탐매 고사는 &lt;탐매도&gt; 또는 &lt;파교심매도&gt;로, 임포의 고사는 &lt;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gt;나 &lt;매감도(梅龕圖)&gt; 라는 이름으로 즐겨 그려졌습니다.</p>
<h2 class="o_title">굴원(屈原)의 충성심을 상진하는 난</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6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56104F5715F1D936381A.jpg" alt="정사초,&lt;묵란도&gt; 중국 남송, 종이에 수묵 25.7*42.4cm, 일본 오오사카 시립미술관 소장 " width="360" height="30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난이 군자의 식물로 애호된 것은 이미 공자(기원전 551∼479)가 살던 시대부터입니다. 시경의 「유란조(幽蘭操)」라는 시에서 공자는 뜻을 펼칠 때를 만나지 못한 답답한 심정을 뛰어난 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잡초에 섞여 자라는 난에 비유하여 읊었다죠.</p>
<p>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로서 애호되던 난은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 기원전 343∼278)에 의해서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임금에게 한 충간(忠諫)이 용납되지 않자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은 충신 굴원이 장편서사시 「이소(離騷)」에서 넓은 땅에 난을 심었다고 한 것인데요. 그의 충성심이 난에 투영되면서 난은 곧 절개와 충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p>
<p>이후 원나라 초기에 정사초(鄭思肖, 1239∼1316)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한 포기 외로운 난으로 표현하였는데요. 이로써 난은 더욱더 절개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죠.</p>
<h2 class="o_title">귀거래사를 읊은 도연명이 좋아한 꽃</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758374F5715F1D9353F70.jpg" alt="장승업, &lt;원랑애국도&gt; 조선 19세기, 종이에 담채, 128.8*31.7cm, 개인소장" width="239" height="639"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국화가 문인들의 애호를 받은 것은 육조시대 전원시인 도연명(365-427)과 관련이 깊습니다. 도연명은 자기의 뜻을 굽혀야 하는 관직 생활을 참지 못하여 80일 만에 사직하고 돌아오며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글을 지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 글에서 그는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고 함으로써 국화에 대한 애틋함을 노래하였습니다.</p>
<p>「음주(飮酒)」라는 시에서도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 꺾어들고,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네.”라 읊었는데요. 자신을 저버리며 사는 것이 싫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관직을 버리고 떠났던 용기, 국화는 도연명의 그런 정신을 대변하는 꽃이 되었습니다.</p>
<p>문인들이 국화를 좋아한 것은 역경을 이겨내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인고의 정신과, 도연명에서 연상되는 은일 정신 때문이었는데요. 장승업의 &lt;원량애국도&gt;는 도연명과 국화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원량은 도연명의 자(字)이죠.</p>
<h2 class="o_title">고기없이는 살아도 대나무 없이는 살 수 없어</h2>
<p>대나무는 일찍이 시경(詩經)에서 ‘군자’로 칭송되었습니다. 주나라 무공(武公, B.C.811∼757)</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35DEE4F5715F1D92E3DB1.jpg" alt="필자미상,&lt;왕휘지애죽도&gt; 비단에 채색, 105.5*60.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dth="246" height="48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의 높은 덕과 인품을 대나무의 수려한 모습에 비유했죠. 이후 3세기 중엽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을 은거처로 삼아 청담(淸談)을 주고받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는 군자로서의 대나무에 더욱 강직한 이미지를 더해주었습니다.</p>
<p>진(晉)나라 때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아들 왕휘지(王徽之, 344∼388)는 “이 사람[此君] 없이 어찌 하루라도 살겠는가?”라며 대나무를 실제 혼이 통하는 것 같은 인격체로 부르기도 하였는데요. 그는 대나무 없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다며 머무는 곳에 대나무가 없으면 반드시 옮겨 심은 다음에야 잠을 잘 정도였다고 합니다.</p>
<p>수 천 년 동안 대나무를 고상하게 부르는 이름 ‘차군’은 이에서 비롯되었는데요. 현세의 욕심에서 벗어나 대나무를 통해 정신적 즐거움을 추구한 왕휘지의 경지는 오랫동안 파장을 불러오며 선망되었죠.</p>
<p>대나무를 통해 정신적 안존을 추구한 인물로 송나라 때 시인 소식(蘇軾, 1036∼1101)을 빼놓을 수 없다는데요. 그는 시에서 “고기 없이 밥은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 살 수는 없다네.”라 하여, 고기반찬으로 상징되는 부귀와 대나무로 상징되는 맑은 덕을 다 가질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맑고 깨끗한 덕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소동파를 비롯한 북송대 문인들의 대나무 예찬은 시각적 형상화로 이어져 송대 이후 묵죽화의 대대적인 발전을 가져왔습니다.</p>
<p>우리나라에서도 60여 수의 매화시로 『매화시첩』을 엮은 이황(李滉, 1501∼1570)을 비롯하여, 사군자를 좋아한 많은 문인들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매화를 무척이나 좋아한 매화 화가 조희룡(趙熙龍, 1797∼1859),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수십 종의 국화를 길렀다는 18세기 김노인(金老人)의 이야기 등은 그 이야기 자체로서도 흥미롭지만 사군자화의 발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p>
<div style="background-color: #dbe8fb; margin-bottom: 1.6em; border: #79a5e4 1px dashed; padding: 10px;">
<p><strong><span style="color: #4174d9;">포스코미술관 전시 안내</span></strong></p>
<ul>
<li>&lt;기획전 &#8211; 四君子, 다시 피우다&gt;</li>
<li>· 전시 장소 :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440 포스코센터 지하 1층 포스코미술관</li>
<li>· 전시 기간 : 2016.3.30(수) ~ 2016.5.25(수)</li>
<li>· 관람 시간 : 월-금 10:00~19:00, 토 12:00~17:00</li>
<li>· 전시 해설 : 12:30, 15:30(일 2회)</li>
</ul>
</div>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11C339570F2BC512C63D.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 소개해 드린<br />
사군자의 고사와 고사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br />
포스코미술관에서 옛 문인의 정신을 음미하는 시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p>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1편. 사군자란 무엇인가?</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1%ed%8e%b8-%ec%82%ac%ea%b5%b0%ec%9e%90%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link>
				<pubDate>Fri, 15 Apr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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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식물들이 있지만, 유난히 옛 선비들이 좋아하던 식물이 있습니다. 매화, 난, 국화, 대나무가 그것인데요,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8216;사군자&#8217;라고도 불리웁니다. 포스코미술관에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624BE38570EF30B0FFE8A.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width="635" height="362"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식물들이 있지만, 유난히 옛 선비들이 좋아하던 식물이 있습니다. 매화, 난, 국화, 대나무가 그것인데요,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8216;사군자&#8217;라고도 불리웁니다.</p>
<p>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 전에서는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p>
<p>지금부터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 소개해 드립니다.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h2 class="o_title">군자의 품성을 닮은 식물, 사군자</h2>
<p>이 세상 수 많은 꽃과 나무들은 제각기 특성이 있어, 때맞추어 피고 지며 자기 몫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매화, 난, 국화, 대나무 이 네 가지 식물을 사군자라 부릅니다. 선비정신을 간직한 고결한 사람을 가리키는 군자의 의미를 사물에 적용시켜, 생태적 특성이 군자를 닮은 식물도 군자라 일컬은 것이죠. 각각의 식물은 여러 장점이 있는데요.</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2CD938570EF30C0761C1.jpg" alt="매화의 모습" width="650" height="38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매화는 겨우내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꽃망울을 맺고 있다가 새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듯 이른 봄에 꽃을 피웁니다. 또한 마른 나무에서 핀 작은 꽃망울은 봄밤을 밝히며 은은한 향을 선사하죠. 추위를 이기며 피어나는 특성 때문에 매화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군자나 지사(志士), 세속에 초월한 은자, 또는 지조 있고 고상한 여인에 비유되기도 합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12BD838570EF30B0703AB.jpg" alt="겨울의 난" width="650" height="38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난은 산중에서 비와 이슬을 받아 살면서도 빼어난 잎에 고운 꽃을 피우며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보내죠. 본성은 바람과 물을 좋아하지만 이 또한 지나친 것을 꺼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난의 생태적 특성에서 옛 문인들은 중용의 도를 지키는 군자의 품성을 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산속에 홀로 피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절제하며 강한 생명력을 지닌 난은 외유내강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7EFC38570EF30B30397D.jpg" alt="국화" width="650" height="38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국화는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인데요. 모든 꽃이 피었다 지고 없는 늦가을, 그때서야 조용히 서리를 맞으며 피어 있는 모습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뭍 꽃이 피는 봄여름을 다투지 않고, 찬 서리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함은 늘 남들보다 뒤에 자리하면서도 더욱 향기롭게 빛나는 군자의 모습이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71DA38570EF30C394B72.jpg" alt="곧은 대나무의 모습" width="650" height="38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대나무는 곧게 자라 휘어질지언정, 쉽게 부러지지 않는 강직함이 있는데요. 속은 비어 넉넉하면서도 한 겨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푸른 잎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늘 푸른 잎과 곧게 뻗은 줄기의 늠름한 모습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군자의 넉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p>
<h2 class="o_title">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물을 묶는 전통</h2>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26BA73F570EF7502F0D7D.jpg" alt="해애제, &lt;세한삼우도&gt;, 고려 14세기, 비단에 수묵, 131.6X98.8cm, 일본 묘만사 소장" width="380" height="510" /><figcaption>해애제, &lt;세한삼우도&gt;, 고려 14세기, 비단에 수묵, 131.6X98.8cm, 일본 묘만사 소장</figcaption></figure>
</div>
<p>각 식물의 독특한 특성은 군자를 지향하는 문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는데요. 군자를 상징하는 식물은 매·란·국·죽 이외에도 사철 푸른 기상을 자랑하는 소나무, 진흙탕 속에서도 맑은 꽃을 피워내는 연꽃, 고아한 모습의 수선화 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이들을 사군자로 정한 것은 가장 적절한 식물이기도 하거니와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에 맞추려는 의도가 담겨있죠.</p>
<p>조선시대 문인 윤선도가 &lt;오우가(五友歌)&gt;에서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친근한 다섯 친구로 노래한 것은 유명합니다. 소나무와 대, 매화 세 가지에 대하여 추위를 견디며 뜻을 펼치는 기개가 있다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도 합니다. 이외에도 매화와 수선을 아취 있는 두 가지 식물이라 하여 이아(二雅), 매화와 대나무를 절개가 굳은 두 식물이라는 의미로 쌍청(雙淸)이라 하는 등, 옛 문인들은 서로 비슷한 의미를 갖는 사물을 묶어 그 유사한 특징을 도출해내거나 비교했던 전통이 있습니다.</p>
<p>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군자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로 읊고 그림으로 그렸는데요. 그러다가 이들 네 가지 식물을 함께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입니다. 명나라 말기의 학자인 진계유(陳繼儒)가 「매죽난국사보(梅竹蘭菊四譜)」라는 화보(?譜)를 만들면서 이들을 네 가지 군자라 칭하고 함께 다루었습니다. 이후 사군자를 함께 다룬 화보들이 늘어나고 우리나라에도 유입되면서 이 넷을 함께 그린 사군자화 또한 널리 유행하였죠.</p>
<h2 class="o_title">글씨를 쓰듯 사군자를 그리면서</h2>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675133F570EF75029D367.jpg" alt="강세황, &lt;사군자&gt;, 종이에 수묵, 39.1X304.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650" height="222" /><figcaption>강세황, &lt;사군자&gt;, 종이에 수묵, 39.1X304.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div>
<p>사군자 그림도 처음에는 각각의 식물이 지닌 모양과 색깔을 닮게 그리는 것이 먼저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각각 식물의 특성이나 상징성이 더 강조되면서 형태의 묘사보다는 그 뜻을 잘 전달하는 데 더 힘을 쏟았죠. 그림이 잘되고 못 되고는 구도나 붓질에 개성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그림에 숙달된 전문화가뿐 아니라 일반 선비들에 의해서도 많이 그려졌습니다.</p>
<p>선비들의 그림인 문인화(文人畵)는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학문 경향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중국 송대에는 문인들 사이에 사물에 자신의 뜻을 의탁하여 노래하는 영물시(詠物詩)가 발달하였고, 사물에 의미를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뜻을 중시한 문인화는 대체로 세부를 생략하여 소략하므로 원대(元代) 이후에는 시(詩) 형식의 화제(畵題)를 곁들여 그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한 폭에 시(詩)·서(書)·화(畵)가 함께 조화를 이루었으며, 문인 화가들 중에는 이 셋에 두루 뛰어나 삼절(三絶)을 이룬 경우도 많았습니다.</p>
<p>특별한 상징성도 있고, 수묵(水墨)으로 간결하게 그릴 수 있는 사군자는 그러한 목적에 잘 부합하는 소재였는데요. 더구나 사군자를 그리는 필획은 문인들이 늘 쓰는 글씨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문인화의 대표 화목이 되었습니다. 사군자화는 글씨를 쓸 때처럼 먹을 찍어 한 번에 쓱쓱 그려내기 때문에 그린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도 하죠. 사군자화는 문인 각자의 학문과 교양, 그리고 글씨를 쓰는 필력을 바탕으로 대상에서 받은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해 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비록 필력이 뛰어나더라도 너무 기교를 부리지 않았고 도리어 소박한 맛을 살려 그렸다고 합니다.</p>
<p>글씨를 쓰듯 사군자에 뜻을 담아 그려낸 것은 어찌 보면 약한 식물이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에게도 가르침을 주는 의젓한 면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군자화에서는 미물에서도 배울 점을 찾았던 겸허한 자세와, 단순한 형태미로 고고한 정신을 표현하였던 선조들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p>
<div style="background-color: #dbe8fb; margin-bottom: 1.6em; border: #79a5e4 1px dashed; padding: 10px;">
<p><strong><span style="color: #4174d9;">포스코미술관 전시 안내</span></strong></p>
<ul>
<li>&lt;기획전 &#8211; 四君子, 다시 피우다&gt;</li>
<li>· 전시 장소 :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440 포스코센터 지하 1층 포스코미술관</li>
<li>· 전시 기간 : 2016.3.30(수) ~ 2016.5.25(수)</li>
<li>· 관람 시간 : 월-금 10:00~19:00, 토 12:00~17:00</li>
<li>· 전시 해설 : 12:30, 15:30(일 2회)</li>
</ul>
</div>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11C339570F2BC512C63D.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class="o_remarks">군자가 사랑하는 네 가지 식물 사군자, 각각의 특성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죠.<br />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사군자 그림을 감상하시고<br />
심신과 지조를 도야하는 시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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