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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군자 이야기 &#8211; 포스코뉴스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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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6편. 허심(虛心)의 공간미 담은 대나무 그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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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May 2016 07: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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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그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여섯 번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6BD645573977E8308FBF.jpg" alt="&lt;사군자, 다시피우다&gt;" width="650" height="343"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justify; clear: none;">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그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여섯 번째 이야기로, 대나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 합니다!</p>
<p>옛사람들에게 대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주는 존재였습니다. 뾰족이 올라온 죽순은 더없이 좋은 먹거리였고, 각종 생활 도구의 재료로 쓰여 삶을 편리하게 했는데요. 생활 속의 이로움과 함께 문인들에게는 유교를 토대로 형성된 동아시아 지성의 상징물로서 사랑을 받았죠.</p>
<p>대나무에 대한 애정도 여러 가지여서 사람들은 여건에 따라 대숲을 조성하거나, 화분에 길러 가까이 하기도 했고, 이를 그림으로 대신해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묵죽에 대한 애호는 끊임이 없어, 문인들 스스로도 즐겼을 뿐 아니라 화원 화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그려졌는데요.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 산수 인물보다 묵죽에 더 많은 배점이 주어진 것은 묵죽화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p>
<h2 class="o_title">매운 바람을 견디는 절개</h2>
<p>조선시대 최고의 묵죽 화가로 꼽히는 인물은 단연 탄은(灘隱) 이정(李霆, 1554∼1626)입니다. 세종대왕의 현손으로 석양군(石陽君)이라는 작호를 받았고, 서화에 능하여 선조의 총애를 받았던 종실 출신의 화가입니다. 그는 굵은 대나무를 힘차게 그려낸 통죽(筒竹), 바람을 맞고 선 풍죽(風竹), 비 맞아 잎이 쳐진 우죽(雨竹), 눈을 덮고 꿋꿋하게 서있는 설죽(雪竹) 등 다양한 대나무의 모습을 여러 기법을 사용하여 자유자재로 그려내었죠.</p>
<p>이정 노년의 원숙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lt;죽도(竹圖)&gt;입니다. 이 작품은 하단에는 바위를 배치하고 농묵으로 그려낸 대나무와 상단에 담묵으로 중단의 대나무와 비슷한 모습을 그린 삼단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담묵으로 농묵의 가지와 비슷하게 그린 가지는 마치 그림자 같기도 하면서 화면에 변화를 주었는데요. 우측 하단에 쓰인 관서를 통해 그의 나이 69세인 1622년 봄에 만년 은거처인 공주의 월선정에서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39px; text-align: center;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A82415739770623A09B.jpg" alt="이정,  &lt;죽도(竹圖)&gt; 비단에 먹, 119*57.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39" height="43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이정 묵죽의 다양한 모습은 41세인 1594년에 완성한 『삼청첩(三靑帖)』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그의 개인 소장 &lt;풍죽(風竹)&gt;은 현재 통용되는 오만 원 권에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유명한 이정의 화풍은 한국적인 묵죽화의 전형을 이루어 후기 양식의 바탕이 되었습죠. 이정의 조카인 김세록(金世祿,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학자이자 독특한 전서의 서예가로도 유명한 허목(許穆, 1595-1682), 좌의정을 지낸 조익(趙翼, 1579-1655) 등도 당시 묵죽화를 남겼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86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345E9405739768A13ED4C.jpg" alt="조익, &lt;죽도&gt; 종이에 채색 100.9*5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86" height="52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조익의 &lt;죽도(竹圖)&gt;는 굵은 왕대의 흔적 옆에 새로 난신죽(新竹)을 표현한 듯 푸른색으로 생생한 대나무를 그려 이채롭습니다. 중앙의 대나무는 화면 위쪽에서 더 이상 몸을 펼 수가 없다는 듯 옆으로 굽어있는데요. 마치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굽혀야만 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죠. 조익이 살았던 선조에서 효종 때까지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등 조선시대 가장 치욕스러운 전쟁이 잇달아 일어났는데요. 그림 속의 구부러진 대나무는 이 시기에 벼슬을하였던 사대부로서 하늘을 볼 수 없는 부끄러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p>
<h2 class="o_title">비어있는 공간의 아름다움</h2>
<p>조선 후기에 묵죽화로 유명한 화가로는 유덕장(柳德章, 1694-1774),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신위(申緯, 1769-1845), 임희지(林熙之 1765-?)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묵죽화는 각자 조금씩 개성있는 화풍을 형성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5973405739768B02632E.jpg" alt="유덕장,&lt;목죽도6곡병&gt; 종이에 수묵, 각 92.5*52.5cm, 개인소장" width="629" height="32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유덕장은 조선 초기의 묵죽 화가인 유진동의 6대 손으로 호는 수운이며,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사대부입니다. 그는 많은 유작을 남겼는데, 추사 김정희가 그의 묵죽도의 제에서 “수운의 죽은 창경하고 고졸하여 팔목에 금강저가 갖추어 있다”고 한 것처럼 대나무의 굳건한 이미지를 표현한 듯 날카롭고 강한 모습의 통죽을 잘 그렸죠. 또한 녹죽, 금니로 그린 대나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린 그림은 대나무의 표현 영역을 한층 넓혀주었습니다.</p>
<p>사군자에 두루 능했던 강세황은 “대나무와 매화를 그릴 때는, 공간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공간을 여유 있게 구성해 시원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그가 매화나 대나무와 같은 사군자를 그릴 때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세황의 묵죽을 가만히 보면 전체적으로는 유연하면서도 강직한 대나무의 특징이 잘 드러나 보이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6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46FF405739768B12604E.jpg" alt="신위&lt;선면목죽&gt; 종이에 수묵, 17.4*56cm, 개인소장" width="369" height="32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강세황의 묵죽에 이어 신위의 묵죽에서도 대나무 줄기를 길게 남겨 여유와 멋이 느껴집니다. 신위는 판서와 도승지를 지낸 전형적인 사대부로 시·서·화에 모두 능한 문인 화가입니다. 그의 묵죽은 강세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실제 남아있는 작품에서 보면 강세황에 비해 줄기가 가늘고 탄력이 있으며, 잎도 필치가 부드러워 더욱더 고아한 풍취가 있습니다. 신위는 특히 시에 뛰어나 그의 묵죽화에는 단아한 그의 글씨로 쓴 적절한 제시가 함께 어울려 묵죽의 품격을 높여줍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2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72B4D405739768C2609D9.jpg" alt="김홍도, &lt;목죽&gt; 종이에 수묵, 23*27.4cm, 간송미술관 소장" width="329" height="319"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화면 구성의 시원한 느낌은 김홍도(金弘道, 1745-?)의 &lt;묵죽(墨竹)&gt;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선방향으로 화면을 가로질러 대나무 줄기가 비스듬히 서 있고 줄기의 아래쪽에는 댓잎이 무성하게 나있는 구도로, 대나무의 중간 부분을 클로즈업해 시원스럽게 구성한 것이죠. 군자의 상징으로서 사대부들이 즐겨 그렸다는 묵죽화이지만화원 화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그려졌습니다. 화원 화가이지만 사실 김홍도는 사대부 못지않은 풍류를 즐겼던 화가였죠.</p>
<h2 class="o_title">댓잎에 서린 문인들의 의취</h2>
<p>이후 조선 말기에는 우봉 조희룡(趙熙龍, 1797-1859), 소치 허련(許練, 1809-1892), 신위의 아들인 애춘 신명연(申命衍, 1809-?), 춘방 김영(金瑛, 1837-?), 사호 송수면(宋修勉, 1847-?), 석촌 윤용구(尹用求, 1853-1939) 등이 개성 있는 묵죽을 많이 남겼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8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민영익, &lt;목죽&gt; 종이에 수묵, 127.8*5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543B0405739768A1588EA.jpg" alt="" width="288" height="53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조선 말기와 근대의 묵죽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운미 민영익(閔泳翊, 1860-1914)과 해강 김규진(金圭鎭, 1868-1933)의 묵죽에서 일 것입니다. 민영익은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로, 당시의 혼란스러운 나라 사정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고종의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상해에 피신해 있으면서 청대의 오창석(吳昌碩, 1844-1927) 등 유명한 서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개성 있는 작품을 남겼는데요. 그의 &lt;묵죽(墨竹)&gt;에서 보이는 끝이 잘린 대나무는 그의 묵란에서 보이는 난 잎의 뭉툭한 모습과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개성을 보여주는 부분이죠.</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2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4CD4405739768A0DD1AF.jpg" alt="김규진&lt;설죽(10폭 병풍)&gt; 천에 수묵, 130*37.4cm, 인주문화재단 소장 " width="628" height="370"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민영익의 묵죽과는 또 다른 개성을 보인 것이 김규진의 묵죽입니다. 그는 1855년부터 8년간 청나라에 유학을 했고, 1915년에는 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해강죽난보(海岡竹蘭譜)』와 『서법진결(書法眞訣)』이란 저서를 남겼는데요. 그는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를 그렸으며, 특히 굵은 통죽(筒竹)을 잘 그려 이후 근대화단에 통죽이 크게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p>
<p>김규진의 뒤를 이어 근대 묵죽화의 길을 활짝 연 사람이 김진우(金振宇, 1883-1950)와 고암 이응로(李應魯, 1904-1989)입니다. 김진우는 김규진이 개설했던 서화연구회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으며, 사군자를 두루 잘 했으나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습니다. 그의 묵죽은 마치 바람결이 느껴질 듯 떨림이 있는 잎과 현대적인 구성미가 돋보입니다. 김진우는 대나무 그림을 팔아 독립군 자금을 댔다고 할 만큼 항일운동에도 적극적인 화가였죠. 대쪽 같은 선비를 상징하는 대나무 그림이 나라를 구하는 독립운동자금으로 쓰였다니 그 의미가 더욱더 깊게 느껴집니다.</p>
<p>묵죽도는 현재까지도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집니다. 대나무의 강한 생명력만큼이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죠. 곧고 푸른 대나무는 그 청정하고 굽힐 줄 모르는 기상으로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이끌어주는 스승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248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3B61405739768B1C66A3.jpg" alt="김진우, &lt;묵죽(불유분용)&gt; 종이에 수묵 140.5*39cm, 개인 소장" width="248" height="758"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72014057397B2E0AD91F.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와 함께 보는 사군자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br />
포스코 미술관 전시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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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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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4편. 맑은 향기 머금은 난 그림</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4%ed%8e%b8-%eb%a7%91%ec%9d%80-%ed%96%a5%ea%b8%b0-%eb%a8%b8%ea%b8%88%ec%9d%80-%eb%82%9c-%ea%b7%b8/</link>
				<pubDate>Wed, 04 May 2016 10:06: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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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60;사군자, 다시 피우다&#62;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네 번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5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69274557286030170CAB.jpg" alt="&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 width="650" height="371"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군자가 사랑한 네 가지 식물을 말하는 사군자! 오는 5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lt;사군자, 다시 피우다&gt;전에서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데요.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 그림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네 번째 이야기! 난과 난 그림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절제된 엄숙미</h2>
<p>난은 꽃 중의 군자로 일컬어져 고결함을 상징하는 오랜 세월 동안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죠. 오늘날에도 동양화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시작할 만큼 필획의 기본으로 삼는 문인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난은 고결한 덕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옛 문인들은 난 그리는 자세와 기법에 삼엄한 수칙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법식에 따라 그리는 것을 꺼렸고, ‘난을 친다’고 하는 것처럼 머뭇거림 없는 운필로 내면의 의취(意趣)를 표출하였죠. 따라서 묵란의 성패는 형태의 재현이라기보다 형상의 바깥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6EB93B572868E906D861.jpg" alt="이정, &lt;묵란&gt; (17세기, 비단에 금니, 크기미상, 《화원별집》소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385" height="478" /><figcaption>이정, &lt;묵란&gt; (17세기, 비단에 금니, 크기미상, 《화원별집》소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div>
<p>조선시대 난 그림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그려졌던 것으로 보이나 기록에 의할 뿐 조선 초기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본격적인 묵란 작품은 조선 중기 묵죽의 대가로 알려진 탄은(灘隱) 이정(李霆, 1541∼1622), 화원 화가였던 이징(李澄, 1581∼?), 그리고 목판화로 남아있는 선조(宣祖)의 묵란 등입니다.</p>
<p>이정의 &lt;묵란(墨蘭)&gt;은 검은 비단에 금물로 바람에 날리는 난 한 포기를 묘사한 것인데요. 좌측 하단 지면에서부터 화면을 꽉 채운 대각선 구도를 보이며, 비스듬히 길고 매끄럽게 뻗은 난엽은 좌우대칭으로 균형을 이룹니다. 중간중간 붓을 돌리듯 떼었다 다시 이어가는 삼전법(三轉法)으로 끊어질 듯 이어져 보일 만큼 필선의 굵기에 변화를 주었죠. 방사 형태로 뻗은 잎은 시원스러운 리듬감이 있고, 잎 사이에 짧게 세 송이 꽃을 그려 넣었는데요. 난 꽃은 정세하고 강한 필선으로 꼼꼼하게 묘사하였습니다.</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63043B572868E9127256.jpg" alt="이징, &lt;묵란&gt; (종이에 먹, 29.8×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244" height="374" /><figcaption>이징, &lt;묵란&gt; (종이에 먹, 29.8×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div>
<p>이징의 작품으로 전하는 &lt;묵란(墨蘭)&gt; 역시 이정의 묵란과 비슷한 형태감을 보입니다. 이징의 묵란은 현전 작품이 많지 않은 조선시대 전반기 난 그림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후에 보게 될 다른 작품보다는 좀  둔한 느낌을 주지만 고졸한 기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p>
<p>이징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문인 택당(澤堂) 이식(李植, 1584∼1647)의 시 &lt;난&gt;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난에 대한 인식을 살필 수 있습니다.</p>
<p>난이 속세의 티끌을 묻히는 것을 싫어해 산중 바위 골짜기 물가에 홀로 피어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자태는 청초하고 향은 그윽하여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고고한 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이는 난에 대한 오랜 찬사입니다. 잡풀 속에서도 그윽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난의 품격은 덕을 갖춘 사람과 같은 것이죠.</p>
<div style="background-color: #dbe8fb; margin-bottom: 1.6em; border: #79a5e4 1px dashed; padding: 10px;">
<ul>
<li>如傀人間被俗塵     인간이 속세에 물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li>
<li>叢生岩谷澗之賓     바위 골짜기 물가에 손님으로 살고 있네.</li>
<li>雖有令色如嬌女     비록 고운 색은 아름다운 여인과 같지만</li>
<li>自有幽香似德人     절로 향기 그윽하여 덕인을 닮았구나.</li>
</ul>
</div>
<h2 class="o_title">다채로운 변화 속의 격조</h2>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74133457286C6405E3EE.jpg" alt="강세황, &lt;선면묵란&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각 21.6×56.1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width="650" height="324" /><figcaption>강세황, &lt;선면묵란&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각 21.6×56.1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div>
<p>난 그리는 법에 의하면 난 잎이 자연스럽게 휘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당두(蟷頭), 잎의 끝을 뾰족하게 빼는 서미(鼠尾), 두 잎이 교차할 때 이루는 모양이 봉황의 눈과 같다 하는 봉안(鳳眼) 등 여러 법식이 있는데요. 이러한 기본 법칙에 따라 운필을 하되 화가들은 이를 나름대로 운용하여 각자 개성 있는 난을 만들게 됩니다. 같은 모양의 글씨를 쓰면서도 각자의 필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죠.</p>
<p>18세기 문인 강세황의 &lt;묵란(墨蘭)&gt;은 잎을 지나치게 빠르게 하거나 기교를 부린 것이 아닙니다. 대여섯 개의 잎과 몇 개의 꽃으로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렸는데요. 한자락 미풍이 살며시 지나간 듯 부드러운 잎은 단아한 격조를 살린 문인화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1202D3B572868EA02CF78.jpg" alt="임희지, &lt;난죽석도&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87.1×42.4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width="410" height="841" /><figcaption>임희지, &lt;난죽석도&gt;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87.1×42.4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figcaption></figure>
</div>
<p>난은 군자의 꽃으로 불리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사람이나 미인의 향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임희지(林熙之, 1765~?)의 난 그림은 마치 미인을 염두에 두고 그린 듯 빼어난 모습이 요염하기까지 하죠. 임희지의 &lt;난죽석도(蘭竹石圖)&gt;는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나온 괴석과 괴석 뒤로 뻗어 나온 대나무, 그리고 괴석 아래 활달하고 힘찬 난이 자신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왼편에는 이 세 가지를 한 폭에 그린 뜻을 적었습니다.</p>
<p>“원장(元章)의 돌, 자유(子猷)의 대나무, 좌사(左史)의 난초, 이를 몽땅 그대에게 주는데 그대는 무엇으로 보답하려는가?”</p>
<p>원장은 북송 대 문인 화가인 미불(米芾)을 가리킨 자인데요. 그는 돌을 좋아하여 괴석을 향해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유는 동진의 서예가 왕휘지(王徽之)로서 하룻밤도 대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묵을 수 없다며 처소에 대를 옮겨 심게 했다는 인물이죠. 좌사는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을 일컫습니다. 이들을 모두 한 폭에 그려 석(石), 난(蘭), 죽(竹)을 한 번에 준다고 한 호기로운 화제들이죠.</p>
<p>18세기 들어 난은 이전 시기에 비해 작품도 많아졌을 뿐 아니라 화풍도 다채로워졌는데요. 강세황, 이인상, 임희지의 난 모두가 다른 느낌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들의 묵란에서는 새로 발간되어 우리나라에서 유통되었던 여러 화보들의 영향도 감지되지만, 화가 각각은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독특한 묵란화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p>
<h2 class="o_title">묵란화의 전성기</h2>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45DA3B572868E71F1CA8.jpg" alt="김정희, &lt;불이선란&gt; (종이에 수묵, 55×31.1cm, 개인 소장)" width="410" height="710" /><figcaption>김정희, &lt;불이선란&gt; (종이에 수묵, 55×31.1cm, 개인 소장)</figcaption></figure>
</div>
<p>이전 시기부터 난 그림이 있었지만, 묵란에 일가를 이룬 전문 화가들이 나타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난을 잘 그렸을 뿐 아니라, 난법을 논하였고, 《난맹첩》을 통해 다양한 난법을 후배들에게 전하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그의 난법을 배운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이하응(李昰應, 1820~1898) 등에 의해 우리나라 묵란화는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p>
<p>추사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로 유명한 김정희의 &lt;불이선란(不二禪蘭)&gt;은 난 잎은 거친 붓으로 담담하게 몇 줄을 그었으나 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치우친 난의 초탈한 경지를 드러내는 듯하죠.</p>
<p>김정희는 이 그림에 스스로 쓰기를 “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문득 그려낸 것”이라 하였습니다. 가슴 속에 20년간 응축된 난의 실체가 이러한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죠.</p>
<p>또한 이는 유마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설법하였던 선(禪)의 경지를 난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요. 그래서 이 난을 선과 난이 서로 둘이 아니라는 뜻의 ‘불이선란’이라고 합니다.</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2B553457286C65353ED0.jpg" alt="김정희, &lt;시우란&gt; (종이에 수묵, 23×85cm, 개인 소장)" width="650" height="174" /><figcaption>김정희, &lt;시우란&gt; (종이에 수묵, 23×85cm, 개인 소장)</figcaption></figure>
</div>
<p>김정희는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에 ‘난은 그림 그리는 법으로 해서는 안되며, 서법으로 난법을 삼아야 하며, 삼전법(三轉法)을 적절히 써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들 상우를 위해 그려 주었다고 전해지는 그림이 &lt;시우란(示佑蘭)&gt;이죠.</p>
<p>김정희가 19세기에 양반 문인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조희룡은 중인 화가들의 대표적인 화가였는데요. 조희룡은 김정희의 글씨체를 모방하기도 하였고 난 그림도 김정희의 난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김정희와 비슷하지만 조희룡의 글씨는 김정희 추사체의 각진 예서보다는 더 둥글고 부드러운 맛이 있습니다. 난 그림은 마치 난 잎을 들에 난 풀처럼 흐드러지게 그려 현란함과 화려함을 보여줍니다.</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26DF93B572868E8342191.jpg" alt="이하응,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49×66cm, 인주문화재단 소장)" width="410" height="920" /><figcaption>이하응,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49×66cm, 인주문화재단 소장)</figcaption></figure>
</div>
<p>조희룡과 마찬가지로 김정희의 난 그림을 배웠다고 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lt;묵란화(墨蘭畵)&gt;는 여러 형식을 보이는데요. 한두 포기의 난을 독립적으로 그리거나 다른 기물과 함께 그리기도 하였는데, 위아래로 긴 화폭에 몇 무리의 난을 바위와 함께 그린 형식이 가장 많습니다. 난엽은 잎 끝이 가늘고 변화가 심한 특징을 보이죠.</p>
<p>김정희 묵란의 투박하고 필획의 변화가 적은 특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김정희는 예서를 바탕으로 사란(寫蘭)을 한 반면, 이하응은 초서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찾기도 합니다.</p>
<p>가는 난이 절벽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김정희와 이하응의 필의(筆意)를 철저하게 따라 그렸던 김응원의 &lt;묵란(墨蘭)&gt;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p>
<p>그는 당시 이하응에게 들어온 그림 청탁을 대신 그렸다고 할 정도로 이하응과 유사한 면을 보입니다. 그러나 김응원의 묵란은 이하응에 비해 힘 있는 필선과 활달함으로 그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보이죠.</p>
<div class="o_imgset">
<figur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676713B572868E81BB5CD.jpg" alt="민영익,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29.5×59cm, 인주문화재단 소장 소장)" width="410" height="886" /><figcaption>민영익, &lt;석란도&gt; (종이에 수묵, 129.5×59cm, 인주문화재단 소장 소장)</figcaption></figure>
</div>
<p>같은 시기 민영익의 &lt;묵란(墨蘭)&gt;은 위태로운 나라를 등지고 타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그의 고뇌와 우울한 심경을 드러내는데요. 마치 잘린 듯 끝이 뭉툭한 난 잎은 현실에서의 좌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 같죠. 더구나 그의 묵란 중 뿌리를 드러낸 &lt;노근묵란(露根墨蘭)&gt;은 뿌리내릴 땅이 없는 나라 잃은 설움을 그대로 드러낸 듯합니다.</p>
<p>김정희, 이하응 등 19세기 대가들의 활약으로 크게 유행하게 된 묵란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근래에는 난 재배법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난을 기르고 여러 의미로 선물하기도 합니다.</p>
<p>풀숲 속에 묻혀서도 향기를 발하던 옛적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난 잎의 빼어남과 꽃의 고결함으로 맑고 향기롭게 살려는 사람들의 이상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가 소개해 드리는 난과 난의 그림에 얽힌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br />
다음 편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img src="https://s.w.org/images/core/emoji/11/72x72/1f642.png" alt="🙂" class="wp-smiley" style="height: 1em; max-height: 1em;"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5/2411C339570F2BC512C63D.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2편. 사군자 고사(故事)와 고사화</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d%8f%ac%ec%8a%a4%ec%bd%94%eb%af%b8%ec%88%a0%ea%b4%80-%ed%8a%b9%eb%b3%84-%ea%b8%b0%ea%b3%a0-2%ed%8e%b8-%ec%82%ac%ea%b5%b0%ec%9e%90-%ea%b3%a0%ec%82%ac%e6%95%85%e4%ba%8b%ec%99%80-%ea%b3%a0/</link>
				<pubDate>Wed, 20 Apr 2016 07:00: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포스코에세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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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사군자 그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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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사군자가 유명해진 것은 사군자에 얽힌 옛 문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죠.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화(故事畵)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고사의 주인공인 문인들을 흠모했던 후대인들에게 사군자의 의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Hello, 포스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nbsp;</p>
<div class="article">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66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77F43A5715F80423F0E7.jpg" alt="사군자, 다시피우다" width="660" height="376"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사군자가 유명해진 것은 사군자에 얽힌 옛 문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죠.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화(故事畵)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고사의 주인공인 문인들을 흠모했던 후대인들에게 사군자의 의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p>
<p>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 연재하는 포스코미술관 사군자 특집 2편! 사군자에 얽힌 옛 문인들의 고사(故事)와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화, 함께 보시죠~!</p>
<h2 class="o_title">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아</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09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537893B5715F7EF35B8EE.jpg" alt="심사정&lt;파교심매도&gt; 조선 1766년 비단에 담채, 115*50.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희룡,&lt;매화서옥도&gt; 조선 19세기 종이에 담채, 130*3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width="309" height="381"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매화에 군자의 상징성이 더해진 것은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탐매(探梅) 고사’ 때문인데요. 그는 한 겨울, 그 해 맨 처음 피는 매화를 찾기 위해 눈 내린 산속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탐매는 이후 많은 문인들에 의해 선비의 멋이자 풍류로 여겨졌죠.</p>
<p>&#8216;탐매 고사’ 이후 매화는 북송대의 시인 임포(林逋, 967∼1028)의 이야기로 은일의 상징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임포는 오늘날 중국 항주 서호의 고산(孤山)에서 매화를 심어 감상하고 매화시를 읊으며 살았는데요.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매화를 아내 삼고[梅妻], 학을 아들 삼고[鶴子], 사슴을 심부름꾼[鹿家人] 삼아 20년 동안 성시에 내려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p>
<p>이러한 삶 때문에 임포의 이야기는 은거를 꿈꾸는 많은 선비들이 이상으로 여겼는데요. 맹호연의 탐매 고사는 &lt;탐매도&gt; 또는 &lt;파교심매도&gt;로, 임포의 고사는 &lt;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gt;나 &lt;매감도(梅龕圖)&gt; 라는 이름으로 즐겨 그려졌습니다.</p>
<h2 class="o_title">굴원(屈原)의 충성심을 상진하는 난</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60px; ;height: auto;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56104F5715F1D936381A.jpg" alt="정사초,&lt;묵란도&gt; 중국 남송, 종이에 수묵 25.7*42.4cm, 일본 오오사카 시립미술관 소장 " width="360" height="304"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난이 군자의 식물로 애호된 것은 이미 공자(기원전 551∼479)가 살던 시대부터입니다. 시경의 「유란조(幽蘭操)」라는 시에서 공자는 뜻을 펼칠 때를 만나지 못한 답답한 심정을 뛰어난 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잡초에 섞여 자라는 난에 비유하여 읊었다죠.</p>
<p>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로서 애호되던 난은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 기원전 343∼278)에 의해서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임금에게 한 충간(忠諫)이 용납되지 않자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은 충신 굴원이 장편서사시 「이소(離騷)」에서 넓은 땅에 난을 심었다고 한 것인데요. 그의 충성심이 난에 투영되면서 난은 곧 절개와 충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p>
<p>이후 원나라 초기에 정사초(鄭思肖, 1239∼1316)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한 포기 외로운 난으로 표현하였는데요. 이로써 난은 더욱더 절개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죠.</p>
<h2 class="o_title">귀거래사를 읊은 도연명이 좋아한 꽃</h2>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758374F5715F1D9353F70.jpg" alt="장승업, &lt;원랑애국도&gt; 조선 19세기, 종이에 담채, 128.8*31.7cm, 개인소장" width="239" height="639" style="cursor: pointer; 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국화가 문인들의 애호를 받은 것은 육조시대 전원시인 도연명(365-427)과 관련이 깊습니다. 도연명은 자기의 뜻을 굽혀야 하는 관직 생활을 참지 못하여 80일 만에 사직하고 돌아오며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글을 지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 글에서 그는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고 함으로써 국화에 대한 애틋함을 노래하였습니다.</p>
<p>「음주(飮酒)」라는 시에서도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 꺾어들고,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네.”라 읊었는데요. 자신을 저버리며 사는 것이 싫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관직을 버리고 떠났던 용기, 국화는 도연명의 그런 정신을 대변하는 꽃이 되었습니다.</p>
<p>문인들이 국화를 좋아한 것은 역경을 이겨내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인고의 정신과, 도연명에서 연상되는 은일 정신 때문이었는데요. 장승업의 &lt;원량애국도&gt;는 도연명과 국화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원량은 도연명의 자(字)이죠.</p>
<h2 class="o_title">고기없이는 살아도 대나무 없이는 살 수 없어</h2>
<p>대나무는 일찍이 시경(詩經)에서 ‘군자’로 칭송되었습니다. 주나라 무공(武公, B.C.811∼757)</p>
<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 inline-block; max-width: 100%;"><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35DEE4F5715F1D92E3DB1.jpg" alt="필자미상,&lt;왕휘지애죽도&gt; 비단에 채색, 105.5*60.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dth="246" height="482" style="max-width: 100%; height: auto;" /></span></p>
<p>의 높은 덕과 인품을 대나무의 수려한 모습에 비유했죠. 이후 3세기 중엽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을 은거처로 삼아 청담(淸談)을 주고받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는 군자로서의 대나무에 더욱 강직한 이미지를 더해주었습니다.</p>
<p>진(晉)나라 때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아들 왕휘지(王徽之, 344∼388)는 “이 사람[此君] 없이 어찌 하루라도 살겠는가?”라며 대나무를 실제 혼이 통하는 것 같은 인격체로 부르기도 하였는데요. 그는 대나무 없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다며 머무는 곳에 대나무가 없으면 반드시 옮겨 심은 다음에야 잠을 잘 정도였다고 합니다.</p>
<p>수 천 년 동안 대나무를 고상하게 부르는 이름 ‘차군’은 이에서 비롯되었는데요. 현세의 욕심에서 벗어나 대나무를 통해 정신적 즐거움을 추구한 왕휘지의 경지는 오랫동안 파장을 불러오며 선망되었죠.</p>
<p>대나무를 통해 정신적 안존을 추구한 인물로 송나라 때 시인 소식(蘇軾, 1036∼1101)을 빼놓을 수 없다는데요. 그는 시에서 “고기 없이 밥은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 살 수는 없다네.”라 하여, 고기반찬으로 상징되는 부귀와 대나무로 상징되는 맑은 덕을 다 가질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맑고 깨끗한 덕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소동파를 비롯한 북송대 문인들의 대나무 예찬은 시각적 형상화로 이어져 송대 이후 묵죽화의 대대적인 발전을 가져왔습니다.</p>
<p>우리나라에서도 60여 수의 매화시로 『매화시첩』을 엮은 이황(李滉, 1501∼1570)을 비롯하여, 사군자를 좋아한 많은 문인들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매화를 무척이나 좋아한 매화 화가 조희룡(趙熙龍, 1797∼1859),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수십 종의 국화를 길렀다는 18세기 김노인(金老人)의 이야기 등은 그 이야기 자체로서도 흥미롭지만 사군자화의 발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p>
<div style="background-color: #dbe8fb; margin-bottom: 1.6em; border: #79a5e4 1px dashed; padding: 10px;">
<p><strong><span style="color: #4174d9;">포스코미술관 전시 안내</span></strong></p>
<ul>
<li>&lt;기획전 &#8211; 四君子, 다시 피우다&gt;</li>
<li>· 전시 장소 :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440 포스코센터 지하 1층 포스코미술관</li>
<li>· 전시 기간 : 2016.3.30(수) ~ 2016.5.25(수)</li>
<li>· 관람 시간 : 월-금 10:00~19:00, 토 12:00~17:00</li>
<li>· 전시 해설 : 12:30, 15:30(일 2회)</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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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loat: none; text-align: center; clear: none;"><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6/04/2411C339570F2BC512C63D.jpg" alt="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width="650" height="67" /></p>
<p class="o_remarks">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 소개해 드린<br />
사군자의 고사와 고사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br />
포스코미술관에서 옛 문인의 정신을 음미하는 시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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