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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철보국 &#8211; 포스코뉴스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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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What's New on POSCO Newsroom</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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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스코청암재단, ‘2020 포스코청암상’ 시상식 개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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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Apr 2020 16:18:14 +0000</pubDate>
				<dc:creator><![CDATA[parky]]></dc:creator>
						<category><![CDATA[보도자료]]></category>
		<category><![CDATA[2020 포스코청암상]]></category>
		<category><![CDATA[With POSCO]]></category>
		<category><![CDATA[제철보국]]></category>
		<category><![CDATA[포스코청암재단]]></category>
									<description><![CDATA[l 포스코센터에서 4월 8일(수) 시상식 개최 l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최소 인원만 참석 포스코청암재단(이사장 김선욱)이 4월 8일 포스코센터에서 제14회 ‘2020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을 가졌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과학상의 홍성유 박사(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l 포스코센터에서 4월 8일(수) 시상식 개최</strong><br />
<strong>l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최소 인원만 참석</strong></p>
<p>포스코청암재단(이사장 김선욱)이 4월 8일 포스코센터에서 제14회 ‘2020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을 가졌다.</p>
<p>이날 시상식에서는 <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075180;">과학상</span></strong></span>의 <strong>홍성유 박사(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strong>, <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008000;">교육상</span></strong></span>의 <strong>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strong>, <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ff6600;">봉사상</span></strong></span>의 <strong>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strong>, <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b10196;">기술상</span></strong></span>의 <strong>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strong>에게 각각 상패와 상금 2억 원을 수여 했다.  올해 시상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수상자와 일부 재단 관계자 등 최소 인원만 참석하여 진행됐다.</p>
<p>김선욱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은 이날 환영사를 통해 “포스코청암재단은 우리나라 과학, 기술, 교육 그리고 봉사 분야에서 창조적이고 헌신적으로 도전하는 분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응원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국민들 마음속에 포스코청암상 수상자들의 숭고한 업적이 봄 햇살처럼 따스한 감동과 위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p>
<div id="attachment_68981" style="width: 97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class="wp-image-68981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2-1.png" alt="포스코청암재단이 4월 8일 포스코센터에서 제14회 ‘2020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홍성유 박사(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윤석렬 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 교장,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 김선욱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 width="960" height="640"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2-1.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2-1-800x533.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2-1-768x512.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class="wp-caption-text">▲ 포스코청암재단이 4월 8일 포스코센터에서 제14회 ‘2020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홍성유 박사(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윤석렬 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 교장,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 김선욱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p></div>
<p><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075180;">과학상</span></strong></span>을 수상한 <strong>홍성유 박사</strong>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기수치모델링 전문가로 ’14년부터 제2대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KIAPS) 단장을 역임하며 한국 기상환경에 최적화된 ‘수치예보모델’의 독자적 개발을 주도해 우리나라가 세계 5위권 기상예측 선도국가로 올라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p>
<p>수치예보모델이란 컴퓨터공학을 활용해 방대한 기상 데이터를 처리함으로써 미래의 기상 상태를 예측하는 중요한 소프트웨어로, 홍성유 박사가 이끄는 한국형수치예보모델사업단이 5년여 연구 끝에 독자 개발에 성공한 ‘육면체구 전지구현업수치예보모델’은 올 상반기부터 기상청 기상예보에 공식적으로 활용될 예정이다.</p>
<p>한편 홍 박사가 미국 해양대기청 연구원 및 대학교수 시절 독자적으로 개발해 온 기상 수치 알고리즘은 전 세계 기상·기후 연구 및 현업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발표한 150여 편의 관련 논문의 총 피인용 횟수가 16,600여 회에 이를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p>
<p><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008000;">교육상</span></strong></span>을 수상한 <strong>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strong>는 ’65년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 수도회가 설립한 직업전문학교로, 지난 55년간 3천여 명의 학교 밖 청소년과 생활고 등으로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을 전국 최고 수준의 기계가공·조립분야 특화 교육으로 숙련된 기술인력으로 양성해 오고 있다.</p>
<p>특히 ‘청소년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는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둔 교육철학과 인성교육을 통해 10개월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청소년들이 기술 습득은 물론 건전한 인생 가치관과 직업관을 확립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한 정직한 시민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p>
<p>이러한 노력의 결과, 최근 10년간 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 졸업생의 95%가 취업에 성공해 경쟁력을 갖춘 직업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p>
<p><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ff6600;">봉사상</span></strong></span>을 수상한 <strong>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strong>는 ’95년 ‘부천이주민노동자의 집’을 시작으로 ’04년 ‘아시아인권문화연대’를 설립하여 외국인 이주민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 오고 있다.</p>
<p>특히 외국인 이주민과 지역주민과의 융화를 위한 다문화 교육 및 한국어 교육 지원에 힘을 쏟고 있으며, 우리 사회를 이주민 포용 사회로 만들기 위한 차별금지법과 이와 관련된 인권조례 제·개정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p>
<p>또한 네팔, 미얀마 등 고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빈곤 해소, 질병 극복, 교육환경 개선 활동을 통해 이주노동자 본국의 사회 발전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책과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p>
<p><span style="color: #ffffff;"><strong><span style="background-color: #b10196;">기술상</span></strong></span>을 수상한 <strong>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strong>는 ’07년 스마트기기의 전력공급 필수 반도체인 전력관리통합칩(PMIC)을 국내 최초로 개발, 세계적 수준의 시스템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한 우리나라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이다.</p>
<p>허염 대표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전력관리통합칩(PMIC)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전자기기의 전력공급을 제어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칩으로 소형화 추세에 있는 스마트기기의 성능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품이다. 매년 매출액의 20% 이상을 R&amp;D에 투자하며 기술력을 강화해 온 허 대표는 오디오칩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신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제2의 도약이 기대되고 있다.</p>
<div id="attachment_68986" style="width: 97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class="wp-image-68986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1-1.png" alt="포스코청암상 각 부문 수상자 다섯 명이 단상에 나란히 서 있다. " width="960" height="640"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1-1.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1-1-800x533.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1-1-768x512.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class="wp-caption-text">▲ 포스코청암재단이 4월 8일 포스코센터에서 제14회 ‘2020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홍성유 박사(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윤석렬 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 교장,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 김선욱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p></div>
<p>포스코청암상은 제철보국의 일념으로 우리나라 산업화와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닦은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리고, 포스코 창업정신의 기본이 되는 창의존중·인재중시·봉사 정신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확산 시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2006년 제정되어 13주년을 맞이했다.</p>
<p>수상자들은 국내외 주요 기관과 전문가들로부터 추천받은 후보자 중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와 선정위원회의 검토, 국내외 석학의 자문 평가, 현장실사 등 6개월의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선정된다.</p>
<p>과학상은 국내에 활동기반을 두면서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창의적인 업적을 이룩해 국가 위상을 드높이고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한국인 과학자에게 시상한다. 교육상은 창의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구현하고 교육계 전반에 확산시킨 인사나 단체를, 봉사상은 인류사회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인사나 단체에 시상하며 재단의 핵심사업인 포스코아시아펠로십과 연계하여 수상 자격을 아시아 지역까지 확대했다. 작년에 신설한 기술상은 산학연 각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사업화하여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인사에게 시상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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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창립 52주년 카드뉴스] 위기에 강한 포스코 DNA</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c%b0%bd%eb%a6%bd-52%ec%a3%bc%eb%85%84-%ec%b9%b4%eb%93%9c%eb%89%b4%ec%8a%a4-%ec%9c%84%ea%b8%b0%ec%97%90-%ea%b0%95%ed%95%9c-%ed%8f%ac%ec%8a%a4%ec%bd%94-dna/</link>
				<pubDate>Wed, 01 Apr 2020 13:00:11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비즈니스]]></category>
		<category><![CDATA[위기 극복]]></category>
		<category><![CDATA[제철보국]]></category>
		<category><![CDATA[철강]]></category>
		<category><![CDATA[카드뉴스]]></category>
		<category><![CDATA[포스코 창립기념일]]></category>
									<description><![CDATA[]]></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890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3/posco_cardnews_cover.png" alt="위기에 강한 포스코 DNA" width="960" height="540"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3/posco_cardnews_cover.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3/posco_cardnews_cover-640x360.png 64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3/posco_cardnews_cover-800x450.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3/posco_cardnews_cover-768x432.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891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0.png" alt="하늘을 배경으로 포스코 공장들이 늘어선 모습. posco 1968년 4월 1일 창립 이래 세계를 뒤흔든 여러 위기들이 있었지만 포스코는 특유의 강인한 의지로 혁신을 거듭하며 성장해왔습니다. 포스코 창립 52주년을 맞아 역경을 딛고 일어선 포스코의 이야기를 정리해봤습니다." width="960" height="476"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0.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0-800x397.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0-768x381.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hr />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909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1-2.png" alt="1979년 제2차 석유파동 때 한국경제성장률과 국제 원유 가격의 추이를 그래프로 보여주고 있다. 위기1. 79년 제2차 석유파동 중동전쟁(1973년), 이란의 이슬람혁명(1978년) 등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이슈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수출을 제한함에 따라 세계 경제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프는 1973년부터 1975년 동안의 1차오일쇼크 때 1973년 15.00% 가까이 되던 한국 경제성장률이 1975년 8.00%까지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국내 물가 상승률은 3.2%에서 24.3%까지 올랐다. 이후 한국은 1976년까지 서서히 경제성장률이 증가하였으나 2차 오일쇼크로 1980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1.70%까지 떨어지고 국제 원유 가격은 36.87$(단위: $/bbl)까지 치솟았다. 또한 국내 물가 상승률도 18.3%에서 28.7%까지 상승하여 한국 경제도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은행, bp.com 대한민국은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에너지 수요가 많은 중화학공업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습니다. " width="960" height="686"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1-2.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1-2-800x572.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1-2-768x549.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893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2.png" alt="바다 위에 세워진 광양제철소 전경 사진. 이 시기 US Steel 등 주요 철강사들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상황이었으나, 포스코는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제2제철소 건설을 추진하여 글로벌 철강사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바다 위에 세워진 광양 제철소 1978년 포항제철, 제2제철 사업자로 선정 1981년 광양만 부지 결정 1985년 광양 1기 착공 이렇게 세워진 광양제철소는 대한민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하며 훗날 세계최대의 단일 제철소로 성장하게 됩니다. ('19년, 조강 21백만 톤)" width="960" height="604"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2.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2-800x503.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2-768x483.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hr />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910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3-2.png" alt="위기2 1997 IMF 외환위기 고도 성장을 거치며 과다하게 차입에 의존한 우리나라 기업경영 방식이 당시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국가가 부도 위기에 몰리고, 대우, 한보 등 주요 그룹들이 몰락하게 됩니다. (좌) 1997년 12월 19일자 &lt;포스코신문&gt; 이미지. 포철,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 철강 내수 5%이상 감소, 경비절감, 일더하기 등 전직원 고통분담 실천 이라는 헤드라인이 보인다. (우) IMF외환위기 전후의 그래프 추이. 그래프는 1991년부터 1997년 사이에 6.00%에서 10.00% 사이를 기록하던 한국 경제성장률이 1998년 -5.50%까지 곤두박질 친 기록을 보여준다. 같은 해 원/미달러 환율 평균(매매 기준율) 1996년 1,000.00원을 밑돌던 것이 1997년부터 상승해 1998년에는 1,398.88원까지 올랐음을 보여준다. *출처: 한국은행 1$당 환율이 2천원까지 치솟으며 국가 경제가 파산지경에 이르고 많은 기업들이 대거 도산하여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게 되는데요. 그런 가운데서도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감동적인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 width="960" height="680"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3-2.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3-2-800x567.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3-2-768x544.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930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4-1.png" alt="이 시기 포스코는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수요산업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판매 및 생산 체제”로 전환을 꾀하게 됩니다.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가 한눈에 보이는 지도 이미지.  지도는 ‘97.9 중국 대련 아연도금강판공장 준공 ‘98.12 미얀마 아연도금강판공장 준공 ‘98.3 동남아 최초의 코일센터인 POS-THAI 준공 ‘99.1 중국 장가항포항불수강 STS 냉연공장 준공 ‘02 인도네시아 코일센터 출범 ‘02 말레이시아 코일센터 출범을 나타내고 있다. (아래 좌) &lt;포스코신문&gt; 1998년 1월 8일 신문의 수출 총력 체제 구축 조직 확대, 현지 마케팅 강화 라는 헤드라인이 보인다. (아래 우)표. 내수물량 1997년 1,866만 톤 1998년 1,741만 톤 125만 톤 감소 수출물량 1997년 6,514만 톤 1998년 수출물량 7,501만 톤 98.7만 톤 증가 포스코의 글로벌 전략이 자리를 잡으면서 당시 25% 수준에 불과했던 수출량은 오늘날, 당시 대비 약 2배 가량으로 대폭 증가하게 됩니다. (현재 포스코는 52개국 3만여 명의 현지 직원과 164개 법인과사무소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 width="960" height="814"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4-1.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4-1-800x678.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4-1-768x651.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hr />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896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5.png" alt="위기3 2008 글로벌 금융 위기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와 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의 부실화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이것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세계 경제가 또 한 번 크게 흔들립니다. (아래) 표. 다우 존스 산업평균 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 미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다우 존스 산업평균 지수 그래프는 2008년부터 급격히 하락해서 2009년에 최하위점을 찍었음을 보여주는데 이 시기가 글로벌 금융위기였음을 화살표 표시로 보여주고 있다. *출처: stockcharts.com 주요국들이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투입하는 가운데, 중국은 대규모 철강설비 신증설을 추진하여 글로벌 공급과잉 문제가 심각하게 부상합니다. " width="960" height="721"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5.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5-800x601.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5-768x577.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915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6-4.png" alt="이 시기 포스코는 “기술기반 차별화” 전략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인 자동차강판 기술개발에 매진하여 중국발 공급과잉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아래 좌) 기가스틸 이미지. 2008년 자동차강판 기술센터 준공(해외 각지에 자동차강판 가공센터 설립) 2009년 기가스틸 개발, 고객사 통합 솔루션 서비스 개시 (아래 우)막대그래프 표. 포스코 자동차강판 판매 추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화살표가 상승 곡선을 보여주고 있다. ‘09년 512만 톤, ‘10년 658만 톤, ‘11년 714만 톤, ‘12년 737만 톤, ‘13년 765만 톤, ‘14년 833만 톤, ‘15년 862만 톤, ‘16년 898만 톤, ‘17년 905만 톤, ‘18년 915만 톤. 이후 포스코는 세계 10대 자동차메이커 모두에게 자동차강판을 공급하여 전세계 자동차 10대 당 1대에는 포스코 자동차강판이 사용될 정도의 글로벌 리딩 철강사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 width="960" height="624"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6-4.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6-4-800x520.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6-4-768x499.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hr />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8912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7-1.png" alt="지금 우리 앞에는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또 다시 세계적 경제위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래) 포항제철소에 설치된 소통보드(LED전광판)가 밝게 빛나고 있는 야경 사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력하시는 공직자, 의료진,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포항제철소 임직원 일동 포항제철소에 설치된 소통보드(LED전광판)를 통해 지역 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밝히는 모습. With POSCO “포스코는 금번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위기 이후 더욱 강해진 100년 기업 포스코의 저력을 보여줄 것입니다.” 창립 52주년 최정우 회장 기념사 중" width="960" height="724"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7-1.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7-1-800x603.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20/04/posco_cardnews_07-1-768x579.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철의 날 20돌] 쇳물은 대한민국號와 함께 흐른다</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c%b2%a0%ec%9d%98-%eb%82%a0-20%eb%8f%8c-%ec%87%b3%eb%ac%bc%ec%9d%80-%eb%8c%80%ed%95%9c%eb%af%bc%ea%b5%ad%e8%99%9f%ec%99%80-%ed%95%a8%ea%bb%98-%ed%9d%90%eb%a5%b8%eb%8b%a4/</link>
				<pubDate>Fri, 07 Jun 2019 09:00:03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포스코에세이]]></category>
		<category><![CDATA[steelsaveearth]]></category>
		<category><![CDATA[경제성장]]></category>
		<category><![CDATA[우향우 정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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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지속가능한 소재]]></category>
		<category><![CDATA[철의 날]]></category>
									<description><![CDATA[올해로 20돌을 맞은 철의 날. 철의 날은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가 현대식 용광로에서 처음 쇳물을 생산한 날을 기념해 만든 날이다. 첫 쇳물이 나온 지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용광로 안전밸브(블리더)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최근 한국철강협회는 초유의 사태를]]></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올해로 20돌을 맞은 철의 날. 철의 날은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가 현대식 용광로에서 처음 쇳물을 생산한 날을 기념해 만든 날이다. 첫 쇳물이 나온 지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용광로 안전밸브(블리더)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최근 한국철강협회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설명자료를 배포하기까지 했다. 아, 그 동안 우리에게 쇳물은 무엇이었나,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strong></p>
<hr />
<h2>l 대한민국의 첫 쇳물, 뜨거운 눈물과 함께 터졌다</h2>
<p>포항제철(現 포스코)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가적 염원 속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정부는 빈곤에서 벗어나 자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철강 산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일관제철소 건설이 추진됐다.</p>
<p><em>“민족 숙원사업인 제철소 건설 실패는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다. 실패할 경우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br />
&#8211; </em><em>故 박태준 명예회장, 포항제철소 착공 (1970년 4월 1일)</em></p>
<p>지금 들으면 우스워보일 수도 있지만 제철소 건설 당시 ‘우향우 정신’은 현장에서 임직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결과 자본과 기술은 물론 경험마저 부족했던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약속된 날짜에 고로 건설을 이뤄낼 수 있었다.</p>
<p>1973년 6월 7일, 박태준 사장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햇빛을 모은 돋보기의 초점을 채화봉 끝에 맞췄다. 첫 쇳물을 마중할 귀중한 불씨가 피워 올랐다. 그리고 1고로에 불을 붙인 지 21시간 만인,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드디어 용광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왔다.</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0611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첫-쇳물.jpg" alt="1973년의 첫 쇳물, 첫 출선의 기쁨을 표현한 일러스트 이미지 " width="960" height="640"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첫-쇳물.jp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첫-쇳물-800x533.jp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첫-쇳물-768x512.jp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p>“만세! 만세!”</p>
<p>박태준 사장과 임직원들은 첫 쇳물을 본 순간 쇳물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쳤다. 대한민국의 첫 쇳물은 그렇게 탄생했다.</p>
<p>그날 시작된 쇳물은 약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과 운명을 함께했다.</p>
<h2>l &#8220;말하지 않아도 알아요&#8221; 철의 날을 맞이하는 철강인의 마음</h2>
<p>철강인들에게 6월 9일은 가슴 뭉클한 날이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46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용광로 불씨를 끄면 안 된다는 사명감은 변함없다. 수많은 건물, 자동차, 교량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지만, 그 역사를 기억하는 철강인들에게는 이 모든 건 &#8216;피와 땀의 결정&#8217;이다.</p>
<div id="attachment_60594" style="width: 8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class="wp-image-60594"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GANG.png" alt="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포항종합제철 준공 기념 아치" width="800" height="481"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GANG.png 957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GANG-800x481.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GANG-768x461.png 768w" sizes="(max-width: 800px) 100vw, 800px" /><p class="wp-caption-text">▲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포항종합제철 준공 기념 아치</p></div>
<p>쇳물의 탄생과 함께 더욱 속도를 낸 일관제철소 설립은 1973년 7월 3일 이뤄졌다. 국민적 여망이었던 포항 1기 설비가 준공되자, 전국에서 축하가 이어졌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는 &#8216;경축 포항제철 준공&#8217;이라고 쓴 기념 아치가 세워지기도 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쇳물의 탄생과 포항제철 준공을 대대적인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때의 흥분과 성취감, 기대를 떠올려본다면 6월 9일 철의 날을 맞이하는 철강인들의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p>
<h2>l 국민 소득 78배 성장, 쇳물은 대한민국과 같이 흘렀다</h2>
<p>포스코의 눈부신 성장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강 생산량 세계 1, 2위의 단일 제철소로 성장했다. 그 결과, 포스코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가 되었고, ‘영일만 신화’, ‘광양만 신화’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그 신화는 자연히 &#8216;한강의 기적&#8217;으로 이어졌다.</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0612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산업-발전.jpg" alt="거대 산업의 기반에 놓여있는 철과 제철소를 표현한 일러스트 이미지 " width="960" height="640"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산업-발전.jp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산업-발전-800x533.jp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산업-발전-768x512.jp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p>철강은 건축 자재, 기계, 선박,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 폭넓게 사용되어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포스코가 성장하고 철강 생산이 늘어남에 따라 자동차, 조선 등 국내 주요 제조업도 함께 성장했다. 양질의 철강재를 저렴하게 국내에서 공급받아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쇳물이 흐르기 전, 후를 주요지표로 비교해보면 그 영향을 더 뚜렷이 알 수 있다.</p>
<p>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나온 1973년, 국내 조선 건조량은 1만 2천 CGT, 자동차생산은 2만 5천 대에 불과했다. 이후 1980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590만 톤, 조선 건조량은 65만 CGT, 자동차생산은 12만 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오늘날(2018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3,770만 톤(국내생산량), 조선 건조량은 770만 CGT, 자동차생산은 402만 9천 대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p>
<p><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60597"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190617_steel_2-1.png" alt="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나온 1973년, 조선건조량은 1만 2천 CGT, 자동차생산은 2만 5천 대. 이후 1980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590만 톤, 조선건조량은 65만 CGT, 자동차생산은 12만 대로 급격히 증가. 2018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3,770만 톤(국내생산량), 조선건조량은 770만 CGT, 자동차생산은 402만 9천 대." width="960" height="435" /></p>
<p>개개인의 삶도 확연히 달라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73년 401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18년에는 3만 1,349달러로 78배 성장했다. 물론 대한민국 모든 산업 성장의 공을 철강으로 돌릴 수는 없다. 50년 눈부신 경제성장의 뒤에는 &#8216;후진국&#8217;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한 온 나라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그 치열했던 50년의 궤를 함께해온 철강인들은, 그 역사와 동행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다.</p>
<p><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60598"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190605_철의-날-에세이-표_수정02.png" alt="한국은행에 따르면 1973년 401달러에 불과했던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에는 1,645달러, 2018년에는 3만 1,349달러로 78배 성장." width="960" height="405"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190605_철의-날-에세이-표_수정02.pn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190605_철의-날-에세이-표_수정02-800x338.pn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190605_철의-날-에세이-표_수정02-768x324.pn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h2>l &#8216;지속 가능한 쇳물&#8217;을 위하여</h2>
<p>20돌 철의 날, 철강인들은 사뭇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 최근 제철소의 심장인 용광로 안전밸브(블리더) 논란을 바라보는 철강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8220;철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해를 발생시키고, 대표적인 굴뚝산업이기 때문에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8221;라고 말하기도 한다. 용광로는 오늘도 묵묵히 뜨거운 쇳물을 잉태하고 있는데, 올해 철의 날은 무거운 마음으로 쇳물의 미래를 걱정하는 날이 될 것 같다.</p>
<p>환경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와 국가 사회적 요구는 경제주체로서 철강업계 또한 받아들여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 철강업계는 소재 산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한 부채 의식과 함께, 철강업은 결국 환경업이라는 숙명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60617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포스코-친환경-제철소.jpg" alt="친환경 제철소, 앞으로 포스코는 더 큰 가치를 위해 나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러스트 이미지 " width="960" height="640" srcset="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포스코-친환경-제철소.jpg 96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포스코-친환경-제철소-800x533.jpg 800w, https://dev-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6/포스코-친환경-제철소-768x512.jpg 768w" sizes="(max-width: 960px) 100vw, 960px" /></p>
<p>따라서 환경문제, 특히 미세먼지 저감 등에 대해 철강업계는 확고한 의지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제철소는 현재의 기술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기술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더 크게 얻는 쇳물의 길을 열어가야 할테니까.</p>
<p>철강인들은 지금까지 쇳물이 흘러온 길이 대한민국이 성장ㆍ발전해 온 길과 다르지 않았듯이, 앞으로도 두 길이 하나라는 것을 믿고 있을 것이다. 쇳물과 함께하는 모든 철강인들이 자긍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과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 나가기를 응원한다.</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 보여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a%b9%80%ec%b2%a0%ec%9a%b0-%eb%b6%80%ec%82%ac%ec%9e%a5-%ea%b3%bc%ed%95%99%ea%b8%b0%ec%88%a0%ec%9c%a0%ea%b3%b5%ec%9e%90/</link>
				<pubDate>Wed, 08 May 2019 17:56:07 +0000</pubDate>
				<dc:creator><![CDATA[뉴스룸 편집팀]]></dc:creator>
						<category><![CDATA[사람과문화]]></category>
		<category><![CDATA[과학기술유공자]]></category>
		<category><![CDATA[기술개발]]></category>
		<category><![CDATA[김철우]]></category>
		<category><![CDATA[애국자]]></category>
		<category><![CDATA[제철보국]]></category>
		<category><![CDATA[제철소건설]]></category>
									<description><![CDATA[l 용광로보다 뜨겁게 혼(魂)을 불사른 김철우 前 부사장에 대한 헌사 올해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고(故) 김철우 포스코 부사장을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하고, 지난달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증서를 수여했다. 포항제철소 1고로를 설계, 건설하는 등 우리나라 최초 제철소 건설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2><strong>l 용광로보다 뜨겁게 혼(魂)을 불사른 김철우 前 부사장에 대한 헌사</strong></h2>
<p>올해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고(故) 김철우 포스코 부사장을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하고, 지난달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증서를 수여했다.</p>
<p><img class="aligncenter wp-image-58986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5/kcw0.jpg" alt=" 고(故) 김철우 포스코 부사장 초상화" width="350" height="358" /></p>
<p>포항제철소 1고로를 설계, 건설하는 등 우리나라 최초 제철소 건설을 기술적으로 주도하고, 포항제철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한국 철강기술 개발의 토대를 구축하여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다. 또 그는 산학연 연구개발체제 구축과 우수한 철강인재 양성을 통해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최고의 철강국가 반열에 올려놓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p>
<p>이번 과학기술유공자 명단에는 고 김호길 포스텍 초대 총장과 권경환 포스텍 수학과 명예교수를 포함한 16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2013년 타개한 김철우 부사장에 대하여는, 그의 헌신과 기여에 비해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p>
<p>일제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 태어나 공학을 배웠고, 이후 조국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으나 분단된 조국이 만들어낸 가족사에 연루돼 7년간 옥살이를 한 인물. 1979년 석방된 이후엔 다시 제철보국의 현장으로 돌아와 포스코 기술개발의 큰 틀을 닦아 오늘의 포스코를 있게 한 인물. 그의 생애를 되짚어 본다.</p>
<h2><strong>l 철 박사 김철우, 박태준을 만나다</strong></h2>
<p>김철우는 1926년 3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공학박사다. 그의 부모는 생계 문제 해결을 위해 일찍이 일본행 배에 몸을 실었으나 가난을 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놓지 않고 금속학도의 길을 걸었다. 도쿄공업대학, 도쿄대 대학원을 거쳐 1956년 도쿄대 연구교수(文部技官)가 되어 철강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어려운 일제 환경에서도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은 신분으로 도쿄대 연구교수가 된 첫 재일동포이기도 했다.</p>
<p>사실 포스코(당시 포항제철) 설립 이전에 그는 신격호 롯데 사장의 요청을 받고 종합제철공장 건설사업 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와 박태준 대한중석 사장의 첫 만남은 1965~1966년께 이뤄졌다.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나간 자리에서 그는 후식으로 못 보던 과일을 봤단다. “이게 뭡니까?” “이건 ‘망고’라는 과일입니다.” 이렇게 김철우와 포스코의 인연은 ‘망고’에서 시작됐다.</p>
<div id="attachment_58980" style="width: 615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class="wp-image-58980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5/kcw1.jpg" alt="1985년 기술연구소 3연구동 착공식에 참석한 김철우 부사장" width="605" height="404" /><p class="wp-caption-text">▲1985년 기술연구소 3연구동 착공식에 참석한 김철우 부사장</p></div>
<p>그리고 1967년 어느 날. 그는 박태준 사장, 박충훈 상공부장관, 윤동석 서울대 박사, 청와대 경제비서 등과 만나게 됐다. 기술 문제가 대두됐지만, 그는 교육만 뒷받침된다면 한국인이 훨씬 빨리 익힐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걸리는 게 있었다. 한국이 제철소 건설에 대일청구권 배상금을 쓰기로 한 점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는 권력자 개인과 정당이 그 돈을 뜯어먹었던 선례가 있었다. 그때 박태준 사장의 말에 김 부사장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p>
<p>“그런 일이 있기는 한데, 내가 맡은 이상 그렇게 못합니다. 김 박사는 나를 잘 모르실 겁니다. 한국에 오셔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나를 아시게 될 겁니다.”</p>
<p>제철소 건설 당시 포항제철은 정부의 정책적 선택에 의해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인 1억 1,948만 달러를 사업자금으로 지원받았다. 그 이후 정부가 출자금의 18배에 해당하는 3조 8,899억 원을 환수했으니 그 이야기를 지킨 셈이다.</p>
<h2><strong>l ‘경제국보 1호’ 포항 1고로를 설계하다</strong></h2>
<p>1968년부터 김철우는 포항제철 건설과정에서 모든 공정 구성과 기술 도입, 그리고 이에 따른 기구 설립 등 기술적인 분야에 참여했다. 그리고 1971년 도쿄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조국의 산업화에 몸담기로 결심한 것이다.</p>
<p>김철우는 한국과학기술원(KIST) 중공업연구실장을 맡아 포항제철소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포항제철 기술이사를 겸임하며 포항 1고로 설계를 주도하고 제철소 건설을 이끈 주인공이 바로 김철우다. 그는 인맥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포항제철에 기술지원을 함으로써 한국의 산업과 경제 발전을 견인하고 철강산업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의 주변에는 제철 전문가가 20명쯤 있었고, 특히 은사가 일본제철(당시 후지제철소) 기술본부장으로 있었다.</p>
<p>김철우가 주도하여 설계, 건설한 연산 103만 톤 규모의 포항 1고로는 훗날 ‘경제국보 1호’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이후 ‘산업의 쌀’을 생산, 가난하던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이바지하게 된다.</p>
<div id="attachment_58981" style="width: 615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class="wp-image-58981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5/kcw2.jpg" alt="1987년 3월 27일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 창립 행사" width="605" height="383" /><p class="wp-caption-text">▲1987년 3월 27일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 창립 행사</p></div>
<h2><strong>l 냉전체제, 7년간의 옥살이를 겪다</strong></h2>
<p>그러나 포항제철 준공식을 한 달여 앞둔 1973년 3월, 김철우는 예기치 못하게 영어(囹圄, 감옥)의 몸이 됐다. 북송(北送)된 동생을 만나러 1970년 북한을 다녀온 일 때문에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수년의 시간을 쏟아 부은, 수고와 땀의 결실인 포항제철소 준공식에 그는 참석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6년 6개월 후 1979년 8월 광복절특사로 석방되었다.</p>
<p>이후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북한에서 황해제철소를 구경하면서 공정 개량에 대한 조언을 해준 것이 이적행위가 되는 줄 몰랐다. 조국을 도와주려고 온 내가 왜 갇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다. 반공법, 국가보안법을 모르고 살아온 내 실수가 그토록 가혹한 상황까지 이어진 것은 극단적인 냉전체제의 비극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p>
<h2><strong>l 평생을 기술개발과 국가발전에 헌신하다</strong></h2>
<p>옥살이를 하고 난 뒤에도 김철우는 고국과 포항제철을 잊지 않았다. 그는 1980년 완전히 귀국하고 포항제철로 복귀해 1987년까지 기술고문, 기술담당 부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오늘날 한국 철강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연구개발을 주도했다. 파이넥스 용융환원제철기술을 비롯해, 스트립캐스팅(Strip Casting)·400계 스테인리스강·초대형 고로 설계기술·자동차강판 소재기술 등 개발에 착수했다.</p>
<p>1989년부터는 탄소 소재기술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인조흑연 제조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추진했다. 또 코크스, 탄소섬유,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 복합재료 등을 포스코의 신성장 사업화 대상으로 확장시키기도 했다.</p>
<p>특히 포항제철 기술연구소장으로 재임 중이던 1984년, 박태준 회장과 함께 ‘포스텍(당시 포항공과대학) 건립’과 ‘산학연 체제 구축’을 구상하고,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 당시 산업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 1987년 출범한 실용화 전문연구기관인 RIST의 초대 소장을 역임하면서 포항제철-포항공대-RIST로 이어진 산학연 연구개발체제 기반을 구축했고, 한국 고유의 철강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협력 연구와 우수인재 양성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p>
<div id="attachment_58982" style="width: 4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img class="wp-image-58982 size-full"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9/05/kcw3.jpg" alt="RIST 연구소 실험동을 찾은 고준식 사장과 최형섭 상임고문(전 과기부 초대 장관), 김철우 부사장(왼쪽부터 차례대로)" width="400" height="265" /><p class="wp-caption-text">▲RIST 연구소 실험동을 찾은 고준식 사장과 최형섭 상임고문(전 과기부 초대 장관), 김철우 부사장(왼쪽부터 차례대로)</p></div>
<p>포스코가 우리나라 철강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 포항제철 건립을 정책적으로 이끈 사람은 박태준이지만, 포스코의 오늘을 과학기술적으로 이끈 인물은 김철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p>
<p>퇴임 이후에는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고문과 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 이사장을 맡아 한국과 일본의 중소기업 기술교류에 힘썼다. 특히 포스코를 퇴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전액을 출연해 사단법인 한국테크노마트를 설립, 일본의 우수 중소기업 기술이전과 산업인재 교류를 위해 노력했다.</p>
<h2><strong>l ‘과학기술유공자’이자 ‘진정한 애국자’</strong></h2>
<p>“1964년, 우리말을 거의 못하는 공학도로 처음 조국에 들어왔을 때, 나는 부산의 제일제당, 대구의 제일모직, 영월의 화력발전소 등으로 안내를 받았다. 기껏 그게 자랑거리인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 보여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p>
<p>김철우가 살아생전에 남긴 이야기다. 그의 많은 지인들은 그가 공학자나 과학자이기 전에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입을 모은다.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으로 인해 고생한 고향 친척들을 위해, 그리고 조국의 산업화를 위해 국가의 요청에 부응하여 다시 한국 철강산업 발전에 혼신의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p>
<p>포항 1고로 설계와 건설을 주도한 공학자, 산학연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한국 철강기술 발전의 기반을 마련한 연구자, 한중일 기술협력과 인적 교류를 통해 한국 소재산업의 기틀을 다진 김철우. 그는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가득찬 진정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였다.</p>
<p>&nbsp;</p>
<p>오는 5월 9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2019 세종과학기술인대회’를 열고 故 김철우 부사장을 비롯해 올해 선정된 과학기술유공자의 업적을 재조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현대사와 얽힌 아픔과 좌절에도 생애 전반에 흐르는 김철우 부사장의 불굴의 의지와 애국심에 삼가 경의를 표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찬란한 빛이 되어주길 손 모아 기원한다. &lt;끝&gt;</p>
]]></content:encode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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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드뉴스] 글로벌 100년 기업을 향한 포스코 4대 전략</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a%b8%80%eb%a1%9c%eb%b2%8c-100%eb%85%84-%ea%b8%b0%ec%97%85%ec%9d%84-%ed%96%a5%ed%95%9c-%ed%8f%ac%ec%8a%a4%ec%bd%94-4%eb%8c%80-%ec%a0%84%eb%9e%b5-%ec%b9%b4%eb%93%9c%eb%89%b4%ec%8a%a4/</link>
				<pubDate>Mon, 02 Apr 2018 00:00:39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비즈니스]]></category>
		<category><![CDATA[100년 기업]]></category>
		<category><![CDATA[POSCO 100]]></category>
		<category><![CDATA[제철보국]]></category>
		<category><![CDATA[창립50주년]]></category>
		<category><![CDATA[포스코]]></category>
									<description><![CDATA[1968년 제철보국의 창업이념으로 출발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포스코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50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마련한 POSCO 100 비전 선포식에서 권오준 회장은 100년 기업을 향한 포스코 그룹의 새로운 미션과 4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1968년 제철보국의 창업이념으로 출발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포스코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50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마련한 POSCO 100 비전 선포식에서 권오준 회장은 100년 기업을 향한 포스코 그룹의 새로운 미션과 4대 전략 방향을 발표했다.</p>
<p>철강사업을 넘어 산업의 스마트화를 이끌고 미래 사회의 기반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로 새로운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포스코의 새로운 기업 미션과 앞으로 50년의 경영전략을 뉴스룸 편집팀이 정리해 봤다.</p>
<p><!-- ================= slide start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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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15.png" alt="unlimit the limit : steel and beyond 글로벌 100년 기업을 향한 포스코 4대전략"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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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23.png" alt="posxo newsroom unlimit the limit : steel and beyond 한계를 뛰어넘어, 철강 그 이상으로"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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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33.png" alt="포스코 4대 전략 biz. 1.portfolio portfolio shift를 통한 미래 성장구조 강건화 2 biz.area 전략국가 중심 global presence 공고화 3.biz. model 소프트와 융합한 biz.model 혁신 4 biz.infra 창의문화기반 smart 경영 인프라 구축"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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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43.png" alt="포스코 4대전략 port folio shift를 통한 미래 성장구조 강건화 1 Core 철강 2 core 인프라 3 core 신성장"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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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53.png" alt="포스코 4대 전략 biz. portfolio 1st core 철강 글로벌 탑 경쟁력 유지 친환경/스마트 생산 체제 구축 world premium 제품지속개발 전기 자동차용 강판 초고강도 구조용 강판 고기능 표면처리 강판"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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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63.png" alt="포스코 4대 전략 biz. portfolio 2nd core 인프라 인프라사업의 고부가가치화 건설 trading ict 에너지 융합형 스마트 비즈 창출 제조와 서비스 융합 "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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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73.png" alt="포스코 4대 전략 biz. portfolio 3nd core 신성장 육성 에너지저장소재,경량소재 육성 seeding bio biz agro biz seeding"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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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83.png" alt="포스코 4대 전략 전략국가 중심 gloal presence 공고화 posco 4대 권역 동북아시아 권역 서남아시아권역 동남아시아 권역 북미 권역 현지완결형 생산파만체제 포스코 그룹 협력기반형 사업 신성장 사업 글로벌 교두보 "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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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093.png" alt="포스코 4대 전략 소프트와 융합한 biz.model 혁신 smartization smart factory smart energy smart b&amp;c Smart Solution Business smart factory smart energy smart b&amp;c+o&amp;m solution posframe platform 그룹사업 전문성 제조·철강 발전·생산 건설·시공+ ict knowledge big data ai lot &gt;&gt; new business smart factory smart energy smart b&amp;c o&amp;m solution"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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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103.png" alt="포스코 4대전략 창의문화 기반 smart 경영 인프라 구축 미래사업에 적합한 창의·융합형 인재육성 smart people 신사업 주도가 가능한 글로벌 기업가형 인재 확보 데이터기반의 스마트의사결정 체계 구축 smart work x&amp;d*기반의 개방적인 일하는 방식 추진 work &amp; life balance 추구 smart life 신뢰기반 수평적 협력 관계 "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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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113.png" alt="posco newsroom 포스코 4대 전략을 통한 성장 목표 매출액 500조원 영업이익 70조원 steel the strongest player infra global top tiel solution provider material world class eco-material leader bio. agro rising life biz. player "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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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mg-box"><img class="alignnone"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8/04/123.png" alt="unlimit the limit : steel and beyond posco 100" width="900" height="900"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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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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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故박태준 명예회장 추모 3주기] 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며</title>
				<link>https://dev-newsroom.posco.com/kr/%e6%95%85%eb%b0%95%ed%83%9c%ec%a4%80-%eb%aa%85%ec%98%88%ed%9a%8c%ec%9e%a5-%ec%b6%94%eb%aa%a8-3%ec%a3%bc%ea%b8%b0-%ec%b2%a0%ea%b0%95%ec%99%95-%ec%b2%ad%ec%95%94%e9%9d%91%e5%b2%a9-%e6%95%85/</link>
				<pubDate>Fri, 12 Dec 2014 16:38:00 +0000</pubDate>
				<dc:creator><![CDATA[posconews]]></dc:creator>
						<category><![CDATA[사람과문화]]></category>
		<category><![CDATA[박태준]]></category>
		<category><![CDATA[박태준 명예회장]]></category>
		<category><![CDATA[박태준 어록]]></category>
		<category><![CDATA[제철보국]]></category>
		<category><![CDATA[철강왕]]></category>
		<category><![CDATA[포스코]]></category>
		<category><![CDATA[포스코 역사]]></category>
									<description><![CDATA[2014년 12월 13일,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8216;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8217;.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이짧은 좌우명처럼 그는강한 신념과 사명감으로 일생을 조국에 바치며불같이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났는데요.조국과 국민을 위해]]></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article">
	<span id="fontsize"></p>
<div class="tt_article_useless_p_margin">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76D8642548804AE16A822.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타이틀_2.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2014년 12월 13일,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p>
</p>
<p>
			&#8216;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8217;.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이짧은 좌우명처럼 그는강한 신념과 사명감으로 일생을 조국에 바치며불같이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났는데요.조국과 국민을 위해 치열하게 살다 간 그는 참된지도자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남아있습니다.
		</p>
</p>
<p>
			오늘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을 기리며 그의삶과 업적, 그리고 그의삶속에 담긴 포스코 정신에 대해되새겨 보겠습니다.
		</p>
</p>
<h2 class="o_title">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을 기억하다!</h2>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7703D45548A55940AC425.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수정_7.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 대한민국을 철강국가로 이끈 우리 시대의 철강왕, 故 박태준 명예회장. &#8216;철&#8217;처럼 강인하고 &#8216;용광로&#8217;처럼 뜨거웠던 그의 삶,그리고 조국근대화를 향한간절했던 의지를 지금 바로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p>
</p>
<p style="TEXT-ALIGN: center">
			<strong></strong>
		</p>
<div class="video_wrap">
	<iframe src="//tv.kakao.com/embed/player/cliplink/v593cRvxuRc1ucqJZeR9R33@my?service=daum_tistory" allow="autoplay; encrypted-media" allowfullscreen></iframe>
</div>
<p style="TEXT-ALIGN: center">
			<strong></strong>
		</p>
<h2 class="o_title">우리나라 경제사에 빼놓을 수 없는 포스코의 땀과 결실, 그 도전의 역사!</h2>
</p>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63F193E548A73182C4853.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수정_9.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style="TEXT-ALIGN: center">
<p>
			대한민국 종합제철소 건설은 우리나라 경제사에 빼놓을 수 없는 포스코의 땀과 결실, 그리고 도전의 역사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던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든 지 어느덧 46년이 지났는데요. 그 역사의 중심에는 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있었습니다.
		</p>
</p>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24964435487EC5D2F70BF.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영상_7.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한국 전쟁 이후, 종합제철소 건설은 당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사업에 포함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당시 열악한 상황에 자금도, 기술도 없었지만 철강왕 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꿈꾸며 새로운 역사에 도전했는데요.
		</p>
</p>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26F9C435487EC5D05CAC6.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영상_8.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 건너가 코퍼스사의 포이 회장과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온 뒤로 제철소 건설은 보다 구체화됐는데요. 이후 코퍼스사를 주축으로 미국, 영국, 서독, 이탈리아 등 4개국의 7개사가 참여해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을 발족됩니다. 그리고 3년 뒤 바로 포스코의 시초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탄생하게 됐죠!
		</p>
</p>
<p>
			하지만 포스코에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습니다.1969년 2월, KISA가 차관제공 약속을 저버리기로 결정한 것인데요. 포스코는 사라질 위기에 닥쳤지만, 대일청구권자금, 즉 일제식민지 배상금이 신의 한 수처럼 포스코를 회생시켰습니다. 포스코의 종잣돈이된 것이 바로일제식민지 배상금이었기에 박태준 명예회장을 비롯해 모든 구성원은 이를꼭 무장할 수 밖에 없는 &#8216;칼날 같은 윤리&#8217;로 삼았습니다.
		</p>
</p>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34718435487EC5D3402A2.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영상_5.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em><strong></strong></em>
		</p>
<p style="TEXT-ALIGN: center">
			<em><strong><span style="COLOR: #5d5d5d">&#8220;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span></strong></em>
		</p>
<p style="TEXT-ALIGN: center">
			<em><strong><span style="COLOR: #5d5d5d">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span></strong></em>
		</p>
<p style="TEXT-ALIGN: center">
			<em><strong><span style="COLOR: #5d5d5d">제철보국을 우리 인생의 신조로 삼자.</span><span style="COLOR: #5d5d5d">&#8220;</span></strong></em>
		</p>
</p>
<p>
			명예회장의 이 비장한 정신과 의지는전 건설요원들의 가슴에 가슴을 타고 번져나갔고,이 &#8216;우향우 정신&#8217;은 제철보국 이념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故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철’은 곧 신앙이었고, 그와 건설요원들은 민족의 숙원인 제철소 건설에 목숨을 걸고사명감을 다지며 허허벌판인 제철소 부지 위에서 모래바람과 싸웠습니다.
		</p>
</p>
<div class="o_imgset">
<figure>
	<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74F50475487FE4B03820E.jpg" alt="△ 포항제철소 건립당시 직원들 사진"><figcaption>△ 포항제철소 건립당시 직원들 사진</figcaption></figure>
</div>
<p>
			1970년 4월,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항제철소가 착공됐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날! 1973년 6월 9일 아침 7시 30분, 포스코 직원 및 건설요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한 순간, 용광로에서 &#8216;뻥&#8217; 하며 황금빛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쇳물이 쏟아지던 순간, 모두 감격에 겨워 손을 번쩍 들어올린 채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습니다.
		</p>
</p>
<div class="o_imgset">
<figure>
	<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712A43F5487E52230D277.jpg" alt="△포항제철소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나오는 감격과 환호의 순간"><figcaption>△포항제철소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나오는 감격과 환호의 순간</figcaption></figure>
</div>
<p style="TEXT-ALIGN: center">
<p>
			그 후 조강 연산 2,100만 톤을 향한 설비공사로 대역사를 완성한 포스코는 1994년 국내 기업 최초 뉴욕 증시 상장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초석을 마련하게 됩니다.
		</p>
</p>
<p>
			이후 포스코는 2000년에 민영화하며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을확장해 나갔는데요.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일관제철소 건설하고 주요 해외 거점 및 생산기지에 생산 설비를 증설하며, FINEX나 poStrip과 같은 혁신적인 독자 기술 개발로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p>
</p>
<p>
			故 박태준 명예회장부터 이어져 온 &#8216;세계 최고&#8217;를 향한일류주의, 그리고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정신으로 포스코는 &#8216;무(無)에서 유(有)&#8217;를 창조하며 대한민국 철강산업을 이끌어 왔습니다.포스코는 여기서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시민으로서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위대함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p>
</p>
<h2 class="o_title">청암(靑岩)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창업철학과 그 속에 담긴 포스코 정신!</h2>
</p>
<p style="text-align:center;">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14603455487F30E0806DE.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영상_13.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항상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삶과 창업 철학은글로벌 No.1 철강기업으로 우뚝 성장한포스코에게 여전히반추에 반추를 거듭할 만한 핵심 경영 철학으로 포스코인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는데요.
		</p>
</p>
<p>
			지금의 포스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리더십과 포스코정신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p>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div style="WIDTH: 99%; BACKGROUND: url(//i1.daumcdn.net/deco/contents/horizontalrule/line03.gif?v=2) repeat-x left 50%; HEIGHT: 15px">
<hr style="BORDER-BOTTOM: black 0px; POSITION: relative; BORDER-LEFT: black 0px; BORDER-TOP: black 0px; BORDER-RIGHT: black 0px; TOP: -9999px; LEFT: -9999px">
		</div>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36B944654880CAD2793D5.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어록_제철보국.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p style="TEXT-ALIGN: justify; FLOAT: none; CLEAR: none">
			
		</p>
<p style="TEXT-ALIGN: justify; FLOAT: none; CLEAR: none">
			&#8220;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쌀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입니다. 우리는 국민과 인류에게 복락(福樂)을 줄 수 있는 제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8221;
		</p>
<p style="TEXT-ALIGN: right; FLOAT: none; CLEAR: none">
<p style="TEXT-ALIGN: right; FLOAT: none; CLEAR: none">
			<em>1978년 3월 28일</em>
		</p>
<p style="TEXT-ALIGN: right; FLOAT: none; CLEAR: none">
			<em>연수원 특강 중</em>
		</p>
<div style="WIDTH: 99%; BACKGROUND: url(//i1.daumcdn.net/deco/contents/horizontalrule/line03.gif?v=2) repeat-x left 50%; HEIGHT: 15px">
<hr style="BORDER-BOTTOM: black 0px; POSITION: relative; BORDER-LEFT: black 0px; BORDER-TOP: black 0px; BORDER-RIGHT: black 0px; TOP: -9999px; LEFT: -9999px">
		</div>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31E404554880B5E0CD49A.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어록_사명의식.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8220;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인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와 민족에게 의무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제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과 절박한 시대적 요청 앞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업을 맡게 됐을 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인연이요 회피할 수 없는 생(生)의 사명이라고 느꼈습니다.
		</p>
</p>
<p>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직원들에게 민족의 진운(進運)을 바꿀 대역사에 동참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고 독려했습니다.&#8221;
		</p>
</p>
<p style="TEXT-ALIGN: right">
			<em>1983년 4월 27일 </em>
		</p>
<p style="TEXT-ALIGN: right">
			<em>사보 &lt;쇳물&gt; 기자와의 대담 중</em>
		</p>
<p style="TEXT-ALIGN: right">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div style="WIDTH: 99%; BACKGROUND: url(//i1.daumcdn.net/deco/contents/horizontalrule/line03.gif?v=2) repeat-x left 50%; HEIGHT: 1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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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p style="TEXT-ALIGN: right">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64F9146548809723D2F86.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어록_책임정신.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p style="TEXT-ALIGN: justify; FLOAT: none; CLEAR: none">
			&#8220;제철소 건설의 대임을 맡았을 때, 세계적 전문기관과 제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가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지원을 약속했던 KISA(대한국제제철차관단)마저 부정적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때의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p>
<p style="TEXT-ALIGN: justify; FLOAT: none; CLEAR: none">
<p style="TEXT-ALIGN: justify; FLOAT: none; CLEAR: none">
			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오를 다지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이때 실패하면 차라리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8216;우향우 정신&#8217;이 생겨났는데, 책임정신의 극한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책임정신을 바탕으로 오늘의 포스코가 탄생했습니다.&#8221;
		</p>
<p style="TEXT-ALIGN: right">
<p style="TEXT-ALIGN: right">
			<em>1983년 4월 27일 </em>
		</p>
<p style="TEXT-ALIGN: right">
			<em>사보 &lt;쇳물&gt; 기자와의 대담 중</em>
		</p>
<p style="TEXT-ALIGN: right">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div style="WIDTH: 99%; BACKGROUND: url(//i1.daumcdn.net/deco/contents/horizontalrule/line03.gif?v=2) repeat-x left 50%; HEIGHT: 1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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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p style="TEXT-ALIGN: right">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67B2E3D54880C003152B8.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어록_공인정신.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style="TEXT-ALIGN: right">
<p style="TEXT-ALIGN: justify">
<p style="TEXT-ALIGN: justify">
			&#8220;국가의 부름을 받고 영일만에 모였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모든 조소와 부정적 논리를 뒤로하고 건설에 박차를 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손으로 국가경제를 일으켜 보려는 철저한 공인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닙니다. 포스코인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인이 된 것입니다.&#8221;
		</p>
<p style="TEXT-ALIGN: right">
<p style="TEXT-ALIGN: right">
			<em>1976년 7월 3일 </em>
		</p>
<p style="TEXT-ALIGN: right">
			<em>임원간담회 중</em>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div style="WIDTH: 99%; BACKGROUND: url(//i1.daumcdn.net/deco/contents/horizontalrule/line03.gif?v=2) repeat-x left 50%; HEIGHT: 15px">
<hr style="BORDER-BOTTOM: black 0px; POSITION: relative; BORDER-LEFT: black 0px; BORDER-TOP: black 0px; BORDER-RIGHT: black 0px; TOP: -9999px; LEFT: -9999px">
		</div>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650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77CD94654880A300320F0.jpg" style="max-width:100%;height:auto" width="650" height="380" filename="어록_희생정신.jpg" filemime="image/jpeg"/></span>
		</p>
</p>
<p>
			&#8220;국가로부터 일관제철 사업의 소임을 부여받은 우리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국민의 여망에 보답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 운영하는 것은 결코 어디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희생에 바탕을 둔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회사는 대일청구권자금을 전용하여 건설한 민족기업입니다. 우리의 모든 정열을 바쳐 신명을 다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8221;
		</p>
</p>
<p style="TEXT-ALIGN: right">
			<em>1977년 6월 6일 </em>
		</p>
<p style="TEXT-ALIGN: right">
			<em>임원간담회 중</em>
		</p>
<p style="TEXT-ALIGN: center; FLOAT: none; CLEAR: none">
			<span class="imageblock" style="display:inline-block;width:1px;WIDTH: 1px; HEIGHT: 1px;height:auto;max-width:100%"><img src="https://newsroom.posco.com/kr/wp-content/uploads/2014/12/271DA435548A9E281260B6.jpg" style="cursor: pointer;max-width:100%;height:auto" onclick="open_img('http://cfile24.uf.tistory.com/original/271DA435548A9E281260B6')" width="1" height="1" filename="3_메인롤링용포스팅.jpg" filemime="image/jpeg"></span>
		</p>
<div>
<div>
<hr class=blue align=justify>
			</div>
</p></div>
</p>
<p>
			포스코 정문에는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긴 &#8216;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8217;이라는 슬로건이 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이 응축되어 있는 슬로건인데요. 포스코의 역사이자 긍지와 자부심인 철강왕 故 박태준 명예회장.
		</p>
</p>
<p>
			앞으로도포스코는 그의 철학과 창업정신을 길잡이 삼아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더 큰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
		</p>
<p>		<!-- Google Analytics  --></p>
<p>
			
		</p>
</p></div>
<p>	</span>
</div>
]]></content:encode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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